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침묵 속에도 온갖 썰이 넘쳐납니다. 동아일보 대통령실팀 기자들이 함께 쓰는 디지털 전용 콘텐츠 [용썰]은 대통령실을 오가는 말의 팩트를 찾아 반 발짝 더 내디뎌 봅니다.
2014년 가을 어느 날.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검찰이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이듬해 한 대검 간부와의 자리. 공안이 주특기였던 이 인사는 자리가 무르익자 댓글 사건 수사를 두고 “제대로 채워져 있는 게 없다”고 불만 섞인 속내를 털어놓았다. 윤석열 수사팀 수사에 주장이 가득한데 이를 입증하는 세부 연결고리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얘기였다. 같은 검사들인데도 사건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달랐다. 한 선배의 평가는 이랬다. “윤이 달마 수사를 했다는 얘기네.” 커다란 붓으로 휘저었는데 속은 비어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 뚝심으로 기록된 ‘국정원 댓글 사건’
인사철마다 ‘윤석열 검사’가 사직한다는 얘기가 돌 때 전화하면 그는 “내가 왜 그만두냐. 죄지은 놈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라고 했다. 좌천됐던 윤 대통령이 서울로 와 집 근처에서 동료 검찰 간부를 마주쳤는데, 이 인사가 모른 척 지나갔다고 한다.(물론 진짜 못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과 지금도 사이가 좋다는 얘기는 안 들린다. 몇몇 검찰 후배들은 ‘윤석열 부장검사’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후배 일부를 성경에 빗대 ‘베드로’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었다. 주요 언론에 국정원 사건 수사가 부실하다며 수사를 비판하던 보도가 나오던 때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곡절을 겪으며 2심부터 유죄가 선고됐다.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 정의를 얘기하는 대표적 사례이자 ‘뚝심’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됐다. 사실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야 박근혜, 문재인 두 정부와 연달아 충돌하는 심적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는 말도 나온다.
● 쇠고집의 전조?
윤 대통령이 2021년 대선 도전 후 맞닥뜨린 최대 위기 중 하나는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 파문이었다. 여러 문제를 두고 ‘사과’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부각해 지지율이 급락하던 시절, 윤 대통령이 중하게 아끼는 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이 ‘X고집’, 손이 많이 가는 큰형” “그냥 사과하면 될 일이지, 예전에도 일을 저지르면 ○○형이랑 얼마나 수습을 했는지.” 그가 밉다는 게 아니라 사태를 잘 수습해 그를 대선 후보로 올린 사람들의 정권교체의 열망을 그르쳐서는 안된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윤 대통령을 향한 반윤(반윤석열) 검사들의 비판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2019년 가을 ‘윤석열 사단’으로 가득 채운 검찰 인사를 발표한 직후 곳곳에서 비판이 제기되자,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인사 기사들 신경쓰지 말고 일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가 그렇게 이어졌다.
모두가 알고 있듯 김 여사는 2021년 12월 26일 직접 나와 사과를 했다. 앞서 한 통신에서 김 여사가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코멘트가 나왔는데, 선거 공식 캠프에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며칠 뒤 대선캠프 브리핑 장을 찾아 정식으로 입을 열었다. “남편이 저 때문에 너무 어려운 입장이 돼 정말 괴롭습니다.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론 김 여사 문제 대응과 해법에 대한 공식 라인의 사과 필요 의견을 윤 대통령이 받아들인 셈이다.
● 의대 정원 2000명은 뚝심으로 기억될까
올 초 최대 뇌관으로 부상했던 김 여사의 ‘명품 디올 백 수수 논란’ 해법을 두고선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윤 대통령이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거나 직접 입장을 표명한다는 예상은 다소 엇나갔다.
용산 내부에서는 “박근혜 정부 사례를 봐라. 좌파를 비롯한 여론의 특성이 한 번 사과하면, 오히려 그 이상을 요구한다. 합리적인 요구가 아니라 사과하면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나왔다. 오히려 사과를 택한 2021년 12월 김 여사의 선택지가 틀렸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넘어선 부당한 공세에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 묻어났다. 이후 윤 대통령은 KBS 대담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 (최 씨가) 자꾸 오겠다고 해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태를 매듭지은 윤 대통령은 구정 이후 의료 개혁을 꺼내 들었다. 국면은 완전히 전환됐다. 윤 대통령은 의대 정원 문제를 두고서도 2000명 증원 문제는 물러설 뜻이 없음을 확고히 했다. “의대 증원 규모가 대학별로 확정됨으로써 의료 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 만들어졌다. 의대 증원은 의료 개혁의 출발점이다.”(윤 대통령)
윤 대통령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접근해달라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대통령 사과와 장차관 파면 후 대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건 새 대한의사협회의 움직임을 윤 대통령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민을 위해 추진한 정책들을 국민이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한일관계 정상화, 노조회계투명화, 사교육 카르텔 혁파 시도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어떤 때는 뚝심으로, 어떤 때는 고집으로 평가가 달라지는 윤 대통령의 결정들. 의료 개혁 문제는 어떻게 정리되고, 훗날 사람들은 이를 어떤 단어로 평가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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