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12]
李 “무능에 경제 폭망, 정권 심판”
韓 “정치를 개같이 해, 李曺 심판”
선거운동 첫날부터 증오 언어
4·10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첫날부터 여야 지도부가 서로에 대한 ‘심판론’을 내세우며 막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향해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지 정치 자체는 죄가 없다”고 했고, 이 대표는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배반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선거운동 첫날부터 민생 정책과 공약 대신 날 선 표현으로 서로를 겨냥해 ‘심판론’ 띄우기로만 점철된 여야의 모습에 유권자들은 “똥 묻은 개끼리 싸운다”며 피로감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유세 현장에서 “정치인을 비하하지 말라”며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본인이 전날 “더 절제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언행을 하는 게 맞다”며 당부한 지 하루 만에 거친 말로 논란을 일으킨 것. 한 위원장은 이날 유세 현장마다 이 대표와 조 대표를 겨냥해 “이-조 심판이 민생”이라며 “범죄자들을 치워 버리겠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서도 “두 사람(이재명·조국)의 유죄 판결이 확정돼 감옥에 가기까지 3년은 너무 길다”며 “정부 전복이 공약인 선거를 본 적 있느냐”고 했다.
민주당은 “부처님 눈으로 보면 다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으로 보면 다 돼지로 보인다”며 맞대응했다. 김민석 종합상황실장은 기자회견에서 “한 위원장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번 선거에 임하지 않겠다. 남은 기간 품격 있게 지지를 호소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 유세 현장에서도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막말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이날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서 선대위 출범식을 열고 “국민을 배신한 윤석열 정권에 우리 국민들의 채찍질이, 회초리가 필요할 때”라며 “정권의 무능 때문에 경제가 폭망했다”고 외쳤다. 이해찬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친야 성향의 김어준 씨 유튜브에 출연해 윤 대통령에 대해 “무모하고 무식하고 무자비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훨씬 양반이었다”며 “(그래서) 아예 심판 선거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승기는 잡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조국 대표도 이날 부산에서 출정식을 열고 “‘이 꼬라지(꼴) 그대로 가다 나라 망하겠다’ 이런 판단으로 힘을 실어 달라”고 날을 세웠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위원장의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유세 현장에서 만난 강모 씨(70)는 “똥 묻은 개끼리 싸우고 있다”며 “막말로 하는 심판론부터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박형석 씨(31)는 “아 또 시작이구나,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국민은 뒷전이구나’ 하는 답답함에 환멸감이 든다”고 했다. 이 대표 유세 현장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 씨(29)는 “하는 짓을 보니 누구를 뽑아도 다 똑같을 것 같다”고 했다.
4·10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8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찾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만난 강모 씨(70)는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찾은 동작구 남성역 앞에서 만난 유모 씨(62)도 “누굴 뽑아도 싸움질만 할 것이 뻔한데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총선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 유세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여야의 막말을 앞세운 심판론, 총선용 포퓰리즘 공약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날부터 마이크를 잡고 유세차에 올라탄 한 위원장과 이 대표는 각각 “이-조(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심판론이 민생”, “나라 망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할 때”라며 각을 세웠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야 모두 힘겨루기만 하지 우릴 위해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등을 돌렸다. ● “막말에 수준 이하로 싸우는 현실 비참”
한 위원장이 이날 오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유플렉스 앞 유세 현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이모 씨는 “무슨 6·25전쟁 때처럼 편 갈라서 프레임 짜고 있는 것 같은데 대단히 잘못됐다”며 “정신없이 살기 바쁜 20대가 정책을 알아보고 투표나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60대 박모 씨는 망원시장 유세 현장을 지나며 “서로 수준 이하로 싸우기만 하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 비참하다”고 했다. 한 시민은 “누가 잘하나의 대결이 아닌 누가 못하나 대결을 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거대 양당이 막말로 심판론을 내세우자 아예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 대표가 찾은 용산역 유세 현장을 지나던 김모 씨(50)는 “지역구 투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거대 양당 후보가 다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김모 씨(29)도 “누구를 뽑아도 다 똑같을 것 같아 투표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다”고 했다. 안모 씨(34)는 “여당도 제대로 일해야 하고, 야당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찍을 정당이 없다”고 했다.
● “25만 원 뜬구름” “물가 잡겠다며 대파 875원”
양당이 내놓은 공약에 대한 싸늘한 반응도 나왔다. 민주당 이 대표가 제안한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대해 직장인 박형석 씨(31)는 “뜬구름 잡는 허황된 공약이다. 25만 원을 다 준다? 이게 지금 가능하겠나”며 “월세 지원이나 청년 주택 같은 것들을 바라는데 4년 동안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 하면서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왕십리역 광장 인근에서 만난 이혜영 씨(28·여)도 “돈을 준다면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갑자기 왜 주는지, 돈 푼 게 경제 회복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파악해보고 판단한 결정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대학생, 고3 수험생, 중학교 2학년 등 자녀 세 명을 둔 신현희 씨(52·여)는 여당이 발표한 ‘세 자녀 대학등록금 면제’ 공약에 대해 “애가 셋이면 학용품, 젓가락까지 자잘한 생활비가 많이 나간다”며 “생활비 지원이 와 닿지 대학 면제가 와 닿겠나”라고 했다. 정보기술(IT) 회사 종사자 이모 씨(35)는 “국민의힘 김포-서울 편입도 갑자기 내놨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유세 현장을 외면했다. 정부 물가 대응을 지적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용달차 기사 장모 씨(55)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이 와중에 ‘대파 875원’이 말이 되느냐”며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실제로 혼자서도 좀 시장 나와보고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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