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대표와 면담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에 반발해 2월 19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를 시작으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45일 만이다. 의정(醫政) 갈등 장기화 국면에서 4·10총선 사전투표 하루 전 의정 대화 물꼬가 트였다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의대 정원 확대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해 다각적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140분가량 면담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박 위원장이 지적하는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하고 전공의 처우,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윤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 아래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공의 요구대로 정원 확대 백지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면담엔 성태윤 정책실장과 김수경 대변인이 배석했다. 정부가 2월 6일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확대를 밝힌 뒤 윤 대통령이 의사단체 대표를 만난 건 처음이다.
면담은 의정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였지만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대 증원 규모는 얘기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박 위원장 얘기를 주로 듣는 자리였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면담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썼다. 면담에 앞서 대전협 비대위는 “행정부 최고 수장을 만나 전공의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만남”이라며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도 했다. 대전협은 2월 20일 전공의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 △업무 개시 명령 폐지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등 7가지를 요구한 바 있다.
4·10총선 사전투표 하루 전날 면담이 성사된 데 대해 여권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은 자체만으로 여권은 부담을 덜어내는 셈”이라고 했다.
전공의와 비공개 140분… “문제점 경청, 증원 규모 얘긴 안나눠”
[의료공백 혼란] 박단 “대통령에 의견전달 의의”… 내부반발 의식 “투표로 최종 결정” 전공의 내부 강경파들 거센 반발… “朴 대표성 없어” 재신임 거론도
“윤석열 대통령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사진)으로부터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했습니다.”(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
윤 대통령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45일 만에 전공의 대표인 박 위원장을 만나며 의료 공백 사태 해법을 찾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면담 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부정적 반응을 내놔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비공개로 140분 동안 진행
이날 면담은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과 김 대변인만 배석한 가운데 오후 2시부터 4시 20분까지 140분 동안 진행됐다. 면담 자리에선 박 위원장이 주로 얘기하고 윤 대통령은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필수의료의 낮은 수가 등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와 전공의 처우 개선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 2월 20일 대전협이 발표한 성명에서 요구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기구 설치 △업무개시명령 폐지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등 ‘7대 요구’에 대해서도 시간을 들여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 쟁점인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선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 후 대통령실에선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만 발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입장 존중’이 전공의 요구대로 ‘정원 확대 백지화’를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한 인터넷 매체는 대통령실이 박 위원장에게 의대 증원 규모를 600명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으나 대통령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박 위원장은 이날 면담을 마친 후 기자들에게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같은 내용을 올렸다.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윤 대통령을 만났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가 없었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 강경파 전공의 “밀실 협의’ 반발
박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을 만나기 전 전공의들에게 “한 번쯤 전공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고 해결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7대 요구)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병원 복귀 등)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를 구했다. 대전협 비대위도 “(그동안) 외부 노출을 꺼리고 무대응을 유지한 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자를 움직이기 위함이었다”며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공의 내부 강경파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인턴 비대위 대표는 “다수의 의견은 의대 증원 백지화 등에 대해 정부가 신뢰할 만한 조치를 보이지 않으면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박 위원장과 비대위원 11인의 독단적 밀실 결정이다. 대전협 비대위는 대표성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부적으로는 탄핵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조만간 박 위원장에 대한 재신임을 묻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첫 면담의 후폭풍이 거센 만큼 향후 대화가 진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사직 전공의는 “정부와 전공의들의 증원 규모 인식 차가 커서 합의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2시간 넘는 면담에도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한 걸 두고 환자단체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대란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정부와 의사단체는 원론적 주장보다는 조속한 합의를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