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침묵 속에도 온갖 썰이 넘쳐납니다. 동아일보 대통령실팀 기자들이 함께 쓰는 디지털 전용 콘텐츠 [용썰]은 대통령실을 오가는 말의 팩트를 찾아 반 발짝 더 내디뎌 봅니다.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의 방향이 결정되는 날이다.”
최근 만난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4월 10일 총선일에 대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3년 임기의 정치적 운명이 여권의 총선 성적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은 표면적으로는 “총선은 당에서 치르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민생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국민의힘이 몇 석을 얻을 수 있겠는가” “조국혁신당은 몇 석이나 예상되는가” 등을 묻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10일 공식 일정을 따로 잡지 않고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개표 결과를 지켜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2024년 4월 10일은 윤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尹, 총선 직전까지 대전·부산·인천 등 찾아 ‘광폭 행보’
윤 대통령은 총선 직전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지난달 28일 4·10총선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이후 민생토론회는 일시 중단됐지만, 윤 대통령은 행사 참석, 종교계 소통, 각종 회의 주재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수서~동탄 구간 개통기념식에, 31일에는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에서 개최된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각각 참석했습니다. 이달 1일 50분간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대전을 찾아 KTX 개통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2일 세종시를 찾아 국무회의와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사회분야)를 직접 주재했습니다.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경제분야)를 주재한 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140분가량 면담했습니다.
이어 윤 대통령은 5일에는 부산을 찾아 5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사전투표를 한 후 부산항 신항 7부두 개장식, 식목일 기념행사 참석했고,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와 삼광사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같은 날인 5일에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에서 사전투표를 마쳤습니다. 김 여사의 사전투표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잠행을 이어오고 있는 김 여사 관련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실이 비공개로 김 여사의 사전투표를 진행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주말이었던 6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 있는 용산어린이정원을 예고 없이 방문해 시민들과 소통했고, 7일에는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방문해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등을 만났습니다. 8일에는 스타트업 청년과의 오찬을 한 후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총선 하루 전날인 9일에도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인천을 찾아 꽃게철 불법조업 단속 현장점검에도 나섰습니다. 또 부천세종병원도 방문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더 다양해진 윤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대통령실은 “민생 행보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행보가 부각되면서 정권 심판론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국민이 감동받거나 그 말에 설득이 되는 게 아니다”며 “국민들이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에게 기대해 온 모습과 지금의 모습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의석수 따라 尹대통령 남은 3년 달라진다
4·10총선 여야 의석수에 따라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등 여권이 100석 미만에 그칠 경우입니다. 개헌·탄핵 저지선이 뚫리게 되고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도 무력화되면서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초접전 지역구에서 국민의힘이 선방할 경우 110~120석 내외를 여권이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운영을 답답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야권이 200석 미만이지만 180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윤석열 정부 출범 초반 때처럼 국정과제 이행에도 어려움은 물론, 여야 대립 구도는 더욱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야권이 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각종 법안을 발의·의결하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여야 대치 구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권이 120석 이상을, 야권이 180석 미만을 가져가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실 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성적표에 연연하지 않고 국정운영 방향을 고수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일부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겠지만, 큰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결국 연금개혁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지 않는가”라며 “윤 대통령의 방향성은 옳았던 만큼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을 본격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과거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4·10총선 이후 여당 내에서는 차기 잠룡들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습니다. 당정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꽉 막힌 대야 관계에 이어 여권 내부 자중지란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 교수는 “여권이 총선 패배를 동력으로 오히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며 “향후 정국은 결국 윤 대통령이 어떻게 변화하느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핵심 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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