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을 묻는 질문에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짤’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했습니다.
175석 압승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고마워해야 한다는 거죠. 집권여당이 워낙 못한 데에 따른 민심의 매서운 심판이 민주당의 승리라는 결과로 나타났을 뿐, 결코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가 아니라는 겁니다.
● 무능력한 윤석열과 어설펐던 한동훈
정부 임기 3년 차에 치러지는 중간 심판 성격의 선거 구조상, 이번 총선은 애초 야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당은 ‘금 사과값’도, ‘의료 대란’도, ‘대파 논란’도 모두 정부·여당 탓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당은 야당의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미 권력을 손에 쥔 집권여당이면서,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못했어요”, “야당이 우리보다 더 나쁜 놈들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죠.
‘원톱’ 체제로 선거를 이끌면서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던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아마추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이미 대선 때 사람들이 국민의힘에 힘을 몰아줬건만, 지난 2년 가까이 못해놓고 이제 와서 또다시 자신들을 대신해 이재명과 조국을 심판해달라니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합니까.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괜히 선거전문정당이 아니다”라며 “한동훈이 혼자 읍소하다가, 갑자기 골든크로스라 했다가, 오락가락하는 선거 메시지를 내뱉는 동안 민주당은 이재명, 이해찬, 김부겸이 각각 세 곳에서 한목소리로 ‘정권심판’을 외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능한 윤석열과 어설픈 한동훈의 합작에 따른 참패라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도 어찌 보면 본인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더 미웠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측면이 있잖아요. 지금 야당도 본인들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 전선 때문에 (승리하게) 된 거란 말이에요. 이게 온전히 나를 지지하는 거라고 착각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국 대표든, 이재명 대표든 지금부터 잘해서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지, 상대가 싫어서 얻은 표를 나를 좋아해서 찍은 표라고 착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또 나빠지는 겁니다. 그걸 경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민주당 이철희 전 의원도 SBS 선거 개표방송에 나와 이같이 지적했더군요. 100% 공감합니다.
● 물론 이재명도 못 했다
당내에선 ‘이재명도 이번 선거 때 결코 잘한 건 아니’란 말도 슬슬 나옵니다. 지금쯤 이재명 대표는 어쩌면 자신의 공천이 다 옳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 내부 평가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서울 동작을’ 패배입니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 때 유독 동작을 선거에 공을 들였죠. 본인이 직접 동작 지역을 찾아가 민주당 류삼영 후보를 지원한 것만 8번, 전화 연결 및 유튜브 라이브로 고공 지원에 나선 것까지 치면 10번도 넘을 겁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에서 4선 중진 출신이 나경원 후보를 내세웠던 만큼 이재명 대표가 직접 정치 신인 류삼영 후보를 지원했던 것”이라며 “사실상 ‘나경원 대 이재명’의 구도였던 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표가 ‘나베’라고 언급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동작을 지원 유세 도중 “별명이 ‘나베’(나경원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관이나 국가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나베’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나경원 후보를 비하하기 위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이름을 섞어 만든 표현입니다. 일본어로는 ‘냄비’를 뜻하다 보니, 여성을 매춘부 등에 빗대는 여성 비하 용어라는 지적을 받았죠.
솔직히 나 후보 입장에선 정말 ‘땡큐’였을 것 같습니다. 이 발언 덕에 ‘방파제론’으로 맞설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이 대표 발언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코 저는 쓰러지지 않는다. 동작 주민이 나경원을 지켜주실 것”이라며 “나경원만 무너뜨리면 대한민국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마지막 방파제이고 최후의 전선”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밖의 공천 참패도 적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총 48석이 걸린 서울에서 37석을 얻었는데, 지난 21대 총선 때 얻었던 41석보다 4석 줄어든 성적입니다. 선거구 획정에 따라 텃밭 중 하나인 노원병이 사라진 데다, 도봉갑과 마포갑, 동작을에서 패배했죠.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 A 는 “혁신공천이랍시고 도봉갑에 안귀령, 마포갑에 이지은을 꽂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도봉갑은 2008년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 승리했던 것을 제외하면 1988년 이래 줄곧 민주당 계열이 지켜온 대표적인 텃밭입니다.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996년부터 2004년까지 현역 의원을 지냈고, 이어 김 전 의장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2012년부터 내리 3선에 성공했던 곳이죠. 민주당 관계자 B는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인이 열심히 바닥부터 닦는 동안 우리 당은 도봉갑을 ‘이미 잡은 물고기’라고 보고 지역 연고도 없는 안귀령 후보를 벼락 공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포갑 역시 노웅래 의원이 2004년에 한 번, 2012년부터는 내리 3선을 했던 지역이죠. 그 전엔 노 의원의 부친인 노승환 의원이 1988년에 당선됐던 곳이기도 하고요. 노웅래 의원은 돈 봉투 의혹으로 이번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됐고, 이 자리에 이 대표가 영입한 인재인 경찰 출신 이지은 후보가 공천됐으나 결국 국민의힘 조정훈 당선인에게 패했습니다.
경기도로 범위를 넓혀보면 경기 화성을에서 패배한 것도 결국 이 대표의 공천 실패 사례입니다. 화성을도 민주당이 2012년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내내 지켜온 텃밭이죠. 이 대표와 개인적 친분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공영운 후보는 ‘아빠 찬스’ 논란으로 선거 막판 곤욕을 치르더니 결국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깜깜이 기간 동안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에게 역전을 당했습니다. 3자 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제3지대 정당 후보의 깜짝 역전극이 성공했다는 건 그만큼 민주당이 공천을 못 했고, 공 후보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총선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어렵겠지만 민주당이 이기길 기대한다. 민주당 내의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거를 통해 제1야당으로서 나라 전체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의무도 있다.”
―그럼 이 대표는 ‘내 선택이 맞다’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바보는 아니다.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쁜 과정을 대신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과정에 대한 기억은 따로다. 과정에 대한 평가는 따로 있어야 한다.”
지난 3월 14일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인터뷰 도중 했던 말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패배를 분석하는 자체 백서에 당시 당의 후보였던 이 대표에 대한 평가나 반성은 제외했습니다. 900쪽짜리 백서엔 온통 ‘정권교체 프레임 탓’, ‘문재인 정부 탓’이어서 당내에서도 논란이 됐죠. 민주당이 과연 이번 총선 과정에 대해선 제대로 평가할 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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