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F-4 팬텀 퇴역 앞둔 수원기지 가보니
1969년부터 도입한 F-4 계열 항공기… ‘F-4D’ ‘RF-4C’ 등 한때 190여 대 운영
현재는 ‘F-4E’ 10대만 남아 임무 수행… 6월 퇴역식 앞두고 현장은 애틋한 분위기
정비사 “수십년 돌보며 자식보다 더 신경”… 퇴역 후엔 대중에 공개해 안보교육 활용
빈자리는 5세대-한국형 전투기가 채워
이달 초 경기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수원기지). 정오 무렵, 엄체호(掩體壕·적의 폭격에 대비해 콘크리트 등으로 견고하게 만든 호) 안에서 이희천 소령(37)과 성재민 대위(31)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조종복을 입고 하네스(전투기 조종석과 조종사를 연결하는 장비)까지 착용한 이들은 엄체호 내에 주기(駐機)된 전투기 F-4E 점검에 한창이었다. 오후 1시 10분 예정인 가상 적기 요격 훈련을 위한 출격을 앞두고 정비 병력과 함께 기체 점검에 나선 것. 두 조종사는 손전등을 들고 전투기 외부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며 안테나 등 각종 장비의 이상 여부를 살폈다.
‘팬텀Ⅱ’(F-4D, F-4E 등 F-4 계열 항공기 통칭) 조종사 및 정비사들이 출격 전 임무를 준비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비슷했다. 다른 기종이 있는 다른 비행장과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공군 비행장 치곤 소음이 들리는 간격이 넓어 낯설었다. 이착륙하는 전투기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깨비’ 팬텀Ⅱ는 6월 퇴역식을 끝으로 55년에 걸친 영공 수호 임무를 모두 마친다. 수원기지에는 12일 현재 F-4E 10대 남짓만 남아 있다.
● 55년 임무 뒤로하고 6월 퇴역
이날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은 평소처럼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기체의 이상 유무를 거듭 확인하는 등 출격 준비에 매진했다. 두 달 뒤면 55년에 걸친 역사를 마무리하고 퇴역하게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이들도 기자가 ‘퇴역’이란 단어를 말하자 자부심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중위 시절인 2011년부터 F-4E만 1300시간 넘게 탔다는 이 소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F-4E는 내 공군 생활의 전부”라면서 “조만간 못 타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난다. 앞으로도 계속 이 전투기를 탈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엄체호에서 F-4E 정비 현황을 감독하던 기체 정비사 문광모 상사(47)는 F-4 퇴역이란 말에 “어후” 하며 탄식부터 내뱉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1998년 21세에 하사로 임관한 뒤 26년간 F-4E만 정비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까지도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라고 했다. “퇴역이 다가온 만큼 마음이 더 애틋해져 정비에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고도 했다.
팬텀Ⅱ 가운데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F-4D였다. 1969년 8월 베트남전 참전에 따른 미국의 특별군사원조 형식으로 최초로 6대가 국내에 온 것. F-4D는 도입 당시 제조국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이란만 보유한 최신예 전투기였다. 당대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명성을 떨치던 기종이기도 했다. F-4D는 처음엔 미국의 군사원조로 도입됐지만 1975년엔 국민들이 방위성금을 모아 5대를 직접 구매했다. 그런 만큼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우리가 우리 돈을 주고 구매한 최초의 전투기라는 상징성도 크다. 이후엔 1977년부터 F-4E가 순차적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F-4D와 F-4E, 전투기를 개조해 만든 정찰기 RF-4C까지 1980, 90년대 최대 190대 안팎에 달했던 팬텀Ⅱ는 6월 퇴역식을 끝으로 55년에 걸친 임무를 종료한다.
팬텀Ⅱ 중 F-4E는 한때 90여 대에 달했다. 지금은 수원기지에 남은 10대 남짓이 전부다. 이마저도 순차 퇴역이 진행되고 있어 퇴역식엔 최후의 3대만 참가한다. 최대 70여 대에 달했던 F-4D는 앞서 2010년, 최대 18대였던 RF-4C는 2014년 모두 퇴역했다. 마지막 남은 F-4E마저 사용 수명 45년에 도달하면서 팬텀Ⅱ의 한반도 영공 수호 임무가 조만간 공식 종결되는 것. 팬텀Ⅱ의 고향 미국에선 2016년 모두 퇴역했다.
● “아들보다 더 많이 보살핀 전투기”
수원기지 내 제153전투비행대대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팬텀Ⅱ를 운용하는 곳이다. 과거 F-4D는 4대 대대, F-4E는 3개 대대에서 운용됐지만 현재는 153대대 1개 대대만 마지막 남은 팬텀Ⅱ F-4E를 운용하고 있다.
이날 이 대대 건물 내부도 팬텀Ⅱ의 퇴역이 코앞까지 왔음을 보여주듯 다소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날 F-4E의 비행 임무 스케줄은 10소티(출격 횟수) 안팎이라고 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마저도 퇴역이 이어지면서 곧 6∼8소티로 줄어들 예정이다. 153대대가 충북 청주기지에서 수원기지로 이전한 2018년 초만 해도 대대에 F-4E가 27대여서 하루에 30소티 가까이 될 때도 있었다.
2018년 1월 대대 이전 당시 60명이었던 조종사도 이제 20명 안팎으로 줄었다. 청주기지에서 152·153·156대대 등 3개 대대가 모두 F-4E를 운영하던 2010년 전후만 해도 조종사가 200명에 가까웠다. 당시엔 F-4E의 이착륙이 쉴 틈 없이 이뤄져 비행단이 늘 시끌벅적했다.
총 비행시간 2000시간 중 F-4E만 1800시간에 달하는 20년 차 베테랑 조종사 김태형 153전투비행대대장(43·중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종사들이 임무 수행 후 착륙할 때 감독차 가보면 왁자지껄했다”면서 “최근 들어선 대대가 정말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감정을 누르는 듯하던 김 대대장은 이 말을 덧붙였다. “전투기 퇴역과 무관하게 빈틈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20년간 함께한 오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던 팬텀Ⅱ가 모두 퇴역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정비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커보였다. 통상 팬텀Ⅱ 조종사는 비상 출격 등에 대비해 F-4E 중 여러 전투기를 돌아가며 타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반면 정비사들의 경우 전투기별 마모 정도가 제각각이고 요구되는 정비도 다른 만큼 정해진 일부 전투기를 맡아 전담한다. 정비사들이 입버릇처럼 자신이 맡은 전투기를 “자식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F-4E 퇴역과 관련해 정비사들은 “더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1993년 하사로 임관한 뒤 31년간 F-4E만 정비해온 장수용 원사(51)는 “스무 살 때부터 F-4E만 봐왔다. 수십 년간 잘 날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또 “작은 정비 실수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내 자식들보다 더 신경 쓰며 돌본 비행기”라며 웃었다. 아들이 셋이라는 그는 “조기 출근하거나 야근을 하면 아들들을 잘 못 보는데 이 전투기는 아들들보다 더 많이 보살폈다”며 “최종 퇴역하는 날은 펑펑 울 것 같다”고 했다.
● 공군 핵심 전력 세대교체
153대대에서 퇴역할 3세대 전투기 F-4E의 임무는 2027년부터 전력화될 예정인 F-35A 20대가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F-35A는 5세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다. 이곳에 앞서 F-4D와 F-4E가 퇴역한 청주기지에도 2019∼2022년 순차 도입된 F-35A 40대가 배치됐다. 2026년 개발이 완료되는 한국형 전투기 KF-21도 팬텀Ⅱ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6월에 진행될 팬텀Ⅱ의 공식 퇴역식은 우리 공군 영공 방위 핵심 전력의 세대교체를 사실상 공식 선포하는 자리다. 지난달 8일에는 수원기지에서 전투기가 활주로에 밀집해 전진하는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코끼리의 행진)’ 훈련이 진행됐다. 당시 맏형인 F-4E 8대를 선두로 F-15K, KF-16, F-16, FA-50, F-35A 등 후배 전투기들이 뒤를 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팬텀Ⅱ에 대한 예우를 다한 것.
팬텀Ⅱ는 퇴장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퇴역한 팬텀Ⅱ 사례처럼 각 공군부대에 전시되거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전시해 안보교육용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팬텀Ⅱ 대대를 지휘하는 김훈경 제10전투비행단 단장(52·준장)은 “퇴역일에는 팬텀Ⅱ가 3대밖에 없겠지만 마지막 날까지도 부여된 임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팬텀Ⅱ는 과거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구매하기도 한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들의 응원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영공을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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