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인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 12석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정국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 세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PK(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으나 개표 결과 국민의힘이 PK 40개 지역구 중 34곳을 석권해 빛이 바랬다. 특히 문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갑에 출마한 민주당 이재영 후보와 양산을 현역인 김두관 후보도 각각 국민의힘 윤영석 후보와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런 가운데 ‘친문 직계’ 전재수 후보가 부산에선 유일하게 민주당 후보로 당선하고, 문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를 받은 민주당 김태선 후보(울산 동구)와 허성무 후보(경남 창원성산)가 배지를 단 점은 눈에 띈다.
여당, PK 40개 지역구 중 34곳 차지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이른바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대표 친문계로 꼽히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친문 좌장격인 4선 홍영표 의원이 각각 컷오프(공천 배제)된 게 논란을 키웠다. 친문계 인사 사이에선 “명문정당이 아니라 멸문정당이 되고 있다”(2월 27일 홍영표 의원 발언)는 반발과 함께 ‘심리적 분당(分黨)’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공천 내홍 속에서 친명(친이재명)계가 꺼내 든 명분은 ‘대선 패배 책임론’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 등으로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으니 총선에서 한 발 물러서라는 것이다. 친명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이 2월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분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굉장히 크다”고 말한 게 친명계 입장을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총선이 본게임에 들어가면서 친문과 친명 간 ‘문명(文明) 갈등’은 표면적으로 봉합된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 행보는 부울경 전역을 향했다. 그는 3월 24일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갑에 출마한 민주당 이재영 후보 선거캠프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27일 고향인 경남 거제에 출마한 민주당 변광용 후보를 만나 격려하는 등 본격적인 총선 지원 유세에 나섰다.
4월 들어 문 전 대통령은 PK 전역을 찾아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했다. 1일 배재정 후보(부산 사상)와 이재영 후보(경남 양산), 2일 김태선 후보(울산 동구)와 오상택 후보(울산 중구), 전은수 후보(울산 남구갑), 3일 박인영 후보(부산 금정), 4일 허성무 후보(경남 창원성산)와 김지수 후보(경남 창원의창), 4월 8일 변성완 후보(부산 강서) 등이다.
문 전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이번 지원 유세에 나섰다. 유권자들에게 인사하거나 후보에게 ‘덕담’을 하는 것 이상이었다. “지금 정부가 너무 못한다. 70 평생에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4월 1일 울산 중구)이라는 발언을 비롯해 “이번 선거는 꼭 이겨야 하는 선거로, 허성무 후보가 승리해야만 경남 지역 전체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4월 4일 창원성산 지역구)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文 “조국혁신당, 국민 분노 뜨겁다는 것 보여줘”
퇴임 후 “잊히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의 총선 지원 유세는 여러모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특정 후보 선거사무소를 방문하거나, 후보와 함께 시민들을 만나 직접 지지를 호소한 일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26일 대구 달성군 자택으로 찾아온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총선에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며 덕담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물론 법적 문제는 없다. 현직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에 따라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자연인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 발언이 민주당뿐 아니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까지 향한 것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문 전 대통령은 4월 5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 등 야당이 선거에서 많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조국혁신당이) 갑자기 만들어진 당이고,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국민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정치 상황에 대해 분노가 뜨겁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문 전 대통령이 조국혁신당 중심의 야권 대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거나, ‘마음의 빚’을 진 조국 대표를 위한 보은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조국 대표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법적·행정적 조치와 별개로 이번 총선에서 12석을 확보하며 약진함으로써 ‘정치적 명예회복’에 성공한 모습이다.
‘정권심판론’을 강하게 주장해 돌풍을 일으킨 조국 대표는 향후에도 여권을 상대로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대여 투쟁 선봉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야권 내부에서 민주당과 차별화 경쟁이 불가피해진 조국 대표가 총선 승리 여세를 몰아 강공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자기 사람’으로 완전 물갈이를 하고 압승까지 거둔 이재명 대표가 강성 기조로 나갈지, 중도 확장을 겨냥한 연성 전략을 택하면서 안정적인 대권 구도 만들기를 할지 고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반윤(反尹)’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현안별로는 국회에서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의 ‘비명횡사’ 공천에서 몰락 위기를 맞았던 친문 세력은 조국혁신당을 발판으로 세력 확대를 모색할 수 있게 됐고, 문 전 대통령은 친문 세력의 ‘상왕’(?)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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