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4·10총선 참패 결과에 대해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고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참패 6일 만에 나온 윤 대통령 입장에는 국정 정책 방향과 기조 설정이 옳았음에도 현재의 국민이 체감할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는 자성이 담겼다.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 개혁에 대한 추진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야당과의 협치, 영수회담 등에 대한 진전된 입장은 포함되지 않아 여당 내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13분가량의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총선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아무리 국정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한다 해도 국민들께서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임 정부를 겨냥해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면서도 “현재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게 바로 정부의 임무”라고 덧붙였다.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정책을 속도감 있게 펼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거대 야당과의 소통에 대해 윤 대통령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책임을 다하면서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민생 안정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법안은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섭 논란’ 등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으로 불거진 불통과 독선 비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 등 야당과의 협치, 장기화한 의정(醫政) 갈등 및 의료공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등 국정 쇄신의 구체적인 해법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4시간여 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비공개 마무리 발언에서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다.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며 “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얼마나, 어떻게 잘할지가 국민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이라고도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와 회담 가능성에 대해 “모두가 다 열려 있다.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지금까지처럼 ‘용산 주도의 불통식 정치’로 일관하겠다는 독선적 선언”이라며 “불통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반성 대신 방향은 옳았는데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맹폭했다.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하면서 야당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라는 총선 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尹 “올바른 국정방향, 국민체감엔 부족” 국정기조 바꿀 뜻 안보여
4·10총선 참패 6일 만인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국무회의장에 설치된 TV카메라로 국민들을 마주한 뒤 내놓은 메시지의 핵심은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았지만 국민 체감에는 모자랐다”로 압축된다. 윤 대통령은 물가 관리, 부동산 정책, 주식시장, 원전 생태계 복원, 늘봄학교 실시, 청년 정책 등 국정 성과를 강조하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며 국민이 체감하지 못한 점을 부각했다. 일방통행식이라는 비판을 받은 국정 운영 방식, 태도에 대한 변화보다 국정 기조 정당화에 방점이 찍힌 윤 대통령의 인식이 드러난 반면, ‘불통 논란’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음에 따라 대통령실과 야권 간 긴장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尹 “올바른 국정 방향, 국민 체감까진 모자라”
윤 대통령이 이날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언한 대목에서는 총선 참패에 대한 인식이 묻어난다. “우리 모두”란 표현은 당초 참모들이 작성한 원고엔 없었던 표현으로 알려졌다. 대통령뿐 아니라 내각 전체의 책임이라는 의미가 부각된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건전 재정을 유지하고 현금 살포 정책을 최소화했다는 자평 속에 국정 기조의 전환은 제시되지 않았다.
민생을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뜻을 담으면서 연설문에는 ‘민생’(11회)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국가장학금을 ‘대폭’ 확대하고, 청년들의 자산 형성과 내 집 마련 지원도 엄청나게 늘리기는 했다”고도 했다. “엄청나게”라는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음성도 고조됐다. 그러면서도 “아직 많은 청년들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훨씬 더’ 세밀하게 챙겨야 했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은 멈출 수 없다”며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국민들께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더 속도감 있게 펼치겠다며 민생토론회를 계속 이어갈 뜻도 내비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정 기조 방향이라는 것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응축된 국민의 총체적인 의견”이라며 “선거로 국정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여권이 전임 정부를 비판할 때 꺼내들던 공세적 표현도 잇따라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라며 “우리 미래에 비춰 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진솔한 사과나 낮은 자세보다는 공격적 어조도 묻어났다. 정연아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는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는 식의 표현들은 사과의 기술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일방통행식 국정기조를 전환하려는 뜻이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용산 주도의 불통식 정치로 일관하겠다는 독선적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 은 국정 기조 유지를 강조한 대통령실을 향해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며 “국민과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구체적 쇄신 방안 언급은 안 해
윤 대통령은 구체적 현안과 국정 쇄신 방향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분열된 민심을 아우르는 통합 메시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무총리 인선을 비롯한 내각 개편, 대통령실 참모진 교체등 인적 쇄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야당이 요구하는 해병대 채모 상병 특검법도 거론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총선 끝나고 일주일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체제 정비에 조금 시간이 걸리고 있다. 국무회의를 통해 거시적인 입장 표명을 우선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공직 기강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 안정을 위해 공직 사회에 일하는 분위기를 잡아 주기 바란다”며 “기강이 흐트러진 것이 없는지 늘 점검해 주기 바란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집권 3년차 야당 192석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공직사회 이완을 경계하려는듯 연이틀 공직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