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동해선 육로(도로) 양측의 가로등을 지난달 상당수 철거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육로는 과거 금강산 관광 및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차량이 오가는 등 남북을 잇는 통로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 개성공단으로 통하던 유일한 육로인 경의선에 지뢰를 매설해 물리적인 남북 관계 단절에 나섰던 북한이 이젠 동해선 육로까지 사실상 폐쇄한 것. 한반도 긴장 수위가 고조된 가운데, 남북이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 관계가 아님을 분명히 알리는 북한의 공세적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이 지난달 말 동해선 육로 가로등 수십 개를 철거하는 모습이 우리 군 감시자산에 포착됐다. 가로등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를 한꺼번에 철거한 것. 정보당국은 북한이 조만간 남은 가로등 추가 철거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동해선 육로는 지난해 말 북한이 이미 경의선 육로와 마찬가지로 지뢰를 대량 매설해 통행용으로는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번에 가로등까지 철거하며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겨냥해 보란 듯 노골적으로 시위성 조치를 취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 시정연설에서 “경의선 우리 쪽(북쪽) 구간을 완전히 끊어놓는 것을 비롯해 접경지역의 북남(남북)연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단계별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이번 가로등 철거 조치가 김 위원장 지시에 따른 남북관계 단절을 위한 물리적·단계적 조치의 한 수순이란 해석도 나온다. 경의선 육로의 경우 앞서 북한이 지뢰를 매설할 당시 콘크리트 방벽까지 설치해 분리 조치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지뢰 매설 등 강경 조치에도 우리 정부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추가 조치를 한 뒤 우리 측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추가적인 물리적 단절 조치에 나설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동해선 육로는 2000년 6·15남북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2002년 8월 남북이 잇기로 합의한 도로다. 2004년부터 본 도로 이용이 시작됐다. 이후 금강산 육로 관광 및 이산가족 상봉, 대북 쌀 지원 같은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남북이 왕래할 때 주로 사용됐다. 2018년 8월 제21차 상봉 당시에도 우리 측 상봉단이 동해선을 이용해 금강산으로 갔다. 다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엔 쭉 폐쇄된 상태였다.
일각에선 북한이 동해선 육로의 불을 꺼버리는 조치에 나선 게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일은 없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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