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관계 두루 원만” 평가
鄭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자서전 ‘사다리 정치’서 야당과의 소통 강조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침묵 속에도 온갖 썰이 넘쳐납니다. 동아일보 대통령실팀 기자들이 함께 쓰는 디지털 전용 콘텐츠 [용썰]은 대통령실을 오가는 말의 팩트를 찾아 반 발짝 더 내디뎌 봅니다.
“나는 야당과의 소통에 특히 노력을 기울였다. 국정 전반에 걸쳐 야당의 협조는 국론 분열을 막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서 인식하고, 원만하고 상생적인 관계를 구축하려 힘썼다.”(2014년 2월 발간된 ‘사다리 정치’)
이 말의 주인공인 정진석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신임 비서실장으로 5선 의원 출신인 정 실장을 임명하면서, 당정·야당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치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 위한 다각도 통로 만들었다”
정 실장은 2014년 2월 낸 자서전 ‘사다리 정치’에서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한 경험을 상세하게 되짚었습니다. 정 실장은 책 프롤로그에서 “서로 단절된 곳을 잇고, 상하와 좌우, 지방과 서울,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이 바로 ‘정진석표 정치’”라고 ‘사다리 정치’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정 소통에 대해서도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다각도의 통로도 만들었다”며 “주요 정책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실질적인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당정청이 직접 만나는 자리를 늘렸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실장은 책에서 야당과의 소통과 화합에 대해서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선 취임 직후 임태희 실장과 함께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예방했다”며 “얼마 후에는 과일을 사 들고 정기국회를 대비한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도 찾아갔다. 새해 인사나 지도부 교체 등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나는 먼저 찾아가 소통하고 화합하고자 했다”고 적어놨습니다.
정 실장은 또 보수 혁신을 주장하는 발언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종종 회자되는 ‘육모방망이’ 발언입니다.
“TK 자민련으로 남아서 뭐 할 건가 도대체. 진짜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한다.”(2017년 5월 17일, 자유한국당 중진의원 간담회)
정 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홍준표 후보가 패배한 이후 보수 혁신을 주장하며 내놓은 것입니다. 당시 거침없는 표현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나, 일각에서는 지나친 표현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정 실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진정한 성찰과 혁신 없이는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한 것”이라고 발언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2022년 6월에는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정 실장 간 설전으로 ‘육모방망이’가 다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사다리 정치’에 거는 기대감
과거 정 실장의 말들을 소환한 건 그에게 ‘사다리’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정 실장이 ‘육모방망이’로 보수 혁신을 외쳤을 때도 현 여권이 절체절명 상황이었는데, 현재도 4·10총선 참패로 윤석열 정부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은 22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을 찾아 정 실장 인선을 직접 발표하면서 “여야 두루 아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내각, 당, 야당, 언론과 시민사회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도 정 실장에 대해 “정치부 기자 출신에 5선 의원,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여야 관계가 두루 원만하다”며 “당정, 대야 관계를 고려했을 때 그만한 사람 찾기는 어렵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반면 한 여권 관계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야당하고 협치가 되겠는가”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래도 우려보다는 기대를 더 받고 있는 정 실장이 자서전에 썼던 것처럼 일을 한다면 ‘일방 소통’ 이미지로 지적받았던 윤석열 정부 국정 쇄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 차에 세 번째 비서실장인데, ‘협치형·정무형·소통형’ 실장이 될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거 같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 동갑내기 친구인 정 실장이 직언이나 쓴소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격의 없는 소통에는 편하겠지만, 윤 대통령이 듣기 불편할 수 있는 민심까지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정 실장은 22일 인선 발표 후 소감을 밝히면서 “오직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24일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내일 그만둬도 내 할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살았다”며 “대통령을 잘 보필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일에 나부터 앞장서겠다”고 했습니다. 정 실장이 자신의 발언을 잊지 않고, 성공한 비서실장으로 기억될지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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