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안보]
집권 13년 맞아 본인 우상화 본격화
김일성 생일 ‘태양절’ 대신 ‘4월 명절’… 北매체-현수막에 ‘김정은 태양’
정부 당국자 “신격화 강도 세져 주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인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신격화를 최근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그 대신 자신을 ‘태양’으로 지칭하는 빈도를 늘리는 등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태양’은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 특히 김일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당시 ‘김일성 따라하기’ 등을 통해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집권 13년 차에 접어들면서 선대의 후광을 거부하고 선대를 뛰어넘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홀로서기에 나선 듯한 모습은 과거 여러 차례 보였지만 최근 그 강도가 달라 보여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 ‘김정은=태양’ 한 달 새 3번 노출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고려투어스(Koryo tours)는 25일 홈페이지에 “북한 파트너(당국)로부터 ‘태양절’(김일성 생일)이란 문구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고려투어스는 북한 전문 여행사다.
북한에서 태양은 김씨 일가 3대에 모두 사용됐지만 그동안엔 김일성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사실상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태양절은 올해 2월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에서 ‘4월 명절’ ‘민족 최대의 명절’ 등으로 바꿔 표현됐다. 15일 태양절 당일 북한 관영매체에서 태양절 표현이 등장한 건 “태양절에 즈음하여”라고 쓴 기사 단 한 건에서였다.
북한 매체들은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도 기존 ‘태양의 성지’란 표현 대신 ‘애국, 혁명의 성지’ 등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다. 내부 선전·홍보물에서도 태양절은 자취를 감췄다.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이란 표현 역시 2월 이후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김일성 생일에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았다. 이곳엔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북한 매체에선 당 간부 등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소식도 알리지 않았는데, 이는 김 위원장 집권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반면 김 위원장을 ‘태양’으로 수식하는 문구의 노출은 부쩍 늘었다. 17일 노동신문에 게재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글에서 김 위원장은 “주체 조선의 태양”으로 불렸다. 지난달 강동종합온실 준공 행사에선 ‘주체 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정보 소식통은 “2010년대 후반 북한 내 ‘김정은주의’ 정립 움직임에 따라 태양 표현이 간헐적으로 등장했지만 최근 그 양상이 늘었다”며 “그 의도나 배경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 “金, 선대 우상화 지우고 본인 업적 부각”
김 위원장은 2019년 3월 선전일꾼에 보낸 서한에서 “김일성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진실 알리기’는 명분일 뿐, 결국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선대에 대한 신격화부터 차단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소식통도 “결국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 선언 등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키려면 일단 북한 주민들이 자신만 바라보게 해야 한다고 믿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통일 지우기’ 주장 등을 의식해 우상화 조치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남북이 통일을 더 지향하지 말고 별개의 국가로 살아야 한다는 등 김일성·김정일의 유훈과 다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결국 김 위원장 입장에선 선대를 어느 정도 끊어내야 자신의 생각·정책이 주민들에게 더 잘 먹힐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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