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尹정부 들어, 지자체-정부 규제 모두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일 01시 40분


정부-정치권 말뿐인 ‘규제 혁신’
지자체 규제, 3만9487→4만164건
226개 시군구 중 규제 감소 ‘0곳’
중앙부처도 4.2% 늘려 4만7640건

규제 혁신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데도 불구하고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현 정부 출범 이후 규제가 줄어든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규제 총량도 오히려 4% 넘게 늘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구호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총선 이후 구성되는 새로운 국회에서는 규제 혁신에 여야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동아일보가 연세대 이정욱·홍순만 교수 공동 연구팀,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솔루션 기업 씨지인사이드와 공동 분석한 결과 지자체의 총규제는 지난해 말 4만164건으로 집계됐다. 이번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말(3만9487건)보다 1.7% 늘었다. 특히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조례 및 규칙의 총 숫자가 줄어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전체 조례와 규칙들의 숫자가 5% 넘게 늘어난 지자체도 21곳에 달했다. 전체 지자체의 약 10%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 부처와 위원회 등 43개 중앙부처의 규제 수 역시 같은 기간 4만5720건에서 4만7640건으로 4.2% 증가했다. 국토교통부가 6966건으로 189건(2.8%) 증가하며 관할 규제 수가 가장 많이 늘었다. 고용노동부(7.2%), 금융위원회(4.4%), 농림축산식품부(3.8%) 등의 규제도 많이 증가했다.

규제 도입 이후 유지된 기간을 의미하는 ‘규제 나이’는 기초지자체가 중앙부처의 약 2배에 육박했다. 중앙부처의 규제 나이는 6.9년, 기초지자체는 13.2년이었다. 정책 환경이 변하면 규제도 계속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중앙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자체가 부족하고 때로는 법령 개정마저도 지방 규제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욱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는 “정부와 정치권 모두 겉으로는 규제 혁신을 외치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능력과 노력은 크게 부족하다”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내세웠던 ‘규제 관리 고도화’ 공약도 그간의 규제 개혁이 충분치 않았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회담에도 규제 혁신은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으로 여야 정치권이 기업과 시민의 발목을 잡는 규제 해결을 적극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자체 규제 4만164건… ‘새벽배송’ 규제 풀 권한 있는줄도 몰라


[정부-지자체 규제 다 늘었다]
기초단체 “강원도 조례로 금지돼”
강원도 “정부 법령 때문에 안돼”… 정부 “기초단체에 규제 풀 권한”
지자체, 법령 개정돼도 완화 소극적… 고시-조례 통한 ‘그림자 규제’ 양산도
“강원도 조례 때문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원권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최근 해당 지역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이 왜 안 되느냐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강원도에 확인해 봤지만 도 관계자는 “그런 조례는 없다. 정부 법령 때문에 새벽배송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말은 또 달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법령에 ‘지자체장이 규제할 수 있다’는 법 조문이 있어 실제는 기초지자체장의 권한”이라고 했다.

이는 지방정부의 규제 개혁이 왜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 지자체가 들고 있는 규제는 상당히 많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권한이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과도한 규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상위 법령을 개선해도 실제 지방에서 적용되는 하부 규제에는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지자체가 저마다 제각각의 규제로 기업과 주민들의 혼란을 자초하는 일도 많다. 규제 개혁이 피부에 와닿게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지자체 단위에서도 개선 작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상위 법령 바뀌어도 지자체는 규제 지속

국내 유통업체들은 전국 오프라인 매장의 새벽배송 규제를 풀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전국 곳곳에서 영업 중인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센터처럼 활용해 중소도시에서도 새벽배송 서비스에 나서고 싶은데 대형마트는 새벽 시간에 영업은 물론이고 유통·물류 업무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현행 법령상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자체들이 나서야 한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범위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영업시간 제한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기초지자체장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새벽배송 서비스를 가능하도록 한 지자체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지자체가 결정하면 바로 가능한데도 현장에선 이를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규제의 근거가 되는 상위 법령이 바뀌었는데도 지자체가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경우도 많다. 강원도의 한 중소기업은 2022년 소하천 구역에 토지 점용 허가를 받은 대가로 548만 원을 냈다. 땅값이 급등하면서 점용료가 1년 전보다 8.3%나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하천 점용료를 전년보다 5% 넘게 인상하지 않도록 한다는 법 개정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자체들은 이런 중앙부처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최근 규제 완화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점용료는 매년 부과되기 때문에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데 상당수 지자체가 상위 법령 개정 사항을 조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이를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 고시, 조례 등 각종 ‘그림자 규제’ 양산

중앙정부의 법령에 의거하지 않고 지자체 스스로 만드는 조례 때문에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최근 경기도의회는 ‘일회용품 없는 학교 만들기’ 관련 조례를 의결하면서 지역 내 모든 학교가 일회용품 사용 실태를 매년 조사해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자 이 지역 유치원 및 초중고교에선 “종이컵 하나 살 때마다 일일이 구매 내역을 기록해야 하느냐”란 반발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경기도교육청은 일회용품 구매 내역 제출을 대폭 간소화하는 쪽으로 타협안을 만들어 재공지했다.

현장에서는 이처럼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지방정부의 각종 조례나 법령의 취지와 동떨어진 고시, 즉 ‘그림자 규제’가 기업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숨은 규제들은 중앙정부 차원의 손길이 뻗치지 않다 보니 정부 부처가 막상 법규를 개선해도 지자체 규제는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사례처럼 지자체 규제 권한이 상당히 큰 데다, 훈령 예규 고시 등 지방정부가 들고 있는 ‘그림자 규제’도 상당히 많다”며 “각 지자체의 규제 강도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규제지도’ 등을 활용해서라도 기업과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지자체가 규제에 대한 균형 감각 없이 규제를 만들어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며 “일부 규제는 상위 법령의 취지를 훼손하는 과도한 규제가 아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혁신#기초단체#그림자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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