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육해공 다자녀 군인 부부
34년 만의 다섯 쌍둥이 “온 동네가 함께 키워”
1개 분대만큼 시끌벅적, 가족들 전우애로 똘똘
《‘대한민국 진짜 수호자’ 육해공군 다자녀 부부들
30대 초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녀를 네 명 이상 낳은 부부 군인들이 있다. 전례 없는 초저출생 위기에 맞서 또 다른 의미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육해공군 대표 다자녀 부부와 아이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육아는 힘들지만 차원이 다른 행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0.72명.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이다.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초저출생 위기로 신음하고 있다. 끝이 아니다. 출산율이 바닥을 찍을 거란 우울한 전망까지 들린다. 여기 출산율 바닥 시대에 역행한 사람들이 있다. 군인 부부인 이들은 30대에 자녀를 4명 이상 출산했다. 대한민국 수호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또 다른 의미로도 ‘애국자’다.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일보는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다자녀 군인 부부 세 쌍에게 초저출생 시대에 다자녀를 양육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앞. 보호자가 아이 1명씩을 데리고 하원하는 모습이 띄엄띄엄 이어졌다. 새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어린이집 앞 풍경은 여유로웠다.
오후 4시 반. 어린이집 앞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김진수 육군 대위(33·17사단)가 어머니 박점자 씨(58), 아이돌보미와 함께 나타난 것. 이들은 136kg까지 태울 수 있는 대형 왜건을 끌고 등장했다. 이내 “천천히 천천히”란 교사의 말소리가 들렸고,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아이 5명이 나왔다. “꺄아아” 하며 어린이집에서 나온 아이들은 2021년 11월 국내에서 34년 만에 태어나 화제가 된 다섯쌍둥이다.
28주 만에 태어나 몸무게 1kg 남짓, 5명 모두 합쳐도 4.9kg에 불과했던 오둥이는 어느새 각각 13kg이 넘는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했다. 맏언니 소현이를 시작으로 수현, 서현, 이현, 청일점 막내 재민이까지. 30개월이 된 오둥이가 차례로 오르자 가로 84cm, 세로 53cm 크기 왜건이 가득 찼다.
아이들이 약한 감기 증세를 보여 왜건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길. 동네 주민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아이고 예뻐라. 많이 컸네.” 주민들은 손을 흔들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서 오둥이를 반겼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며 “타요!”라고 외치던 아이들도 주민들이 인사하면 익숙하다는 듯 함께 손을 흔들었다. 주민 이영례 씨(74·여)는 “세상에 어떻게 배 속에 다섯 명이 사이좋게 있었는지 기특하다”며 웃었다. 오둥이 아빠 김 대위는 “어디를 가나 알아봐 주신다. 과자를 주시는 등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하셔서 감사하다”며 “온 동네가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기분”이라고 했다.
아파트 1층인 오둥이 집 현관에는 똑같은 신발 5켤레와 유모차 등 각종 육아용품이 가득했다. 부엌에 아기 식탁 의자 5개가 늘어선 모습은 대형 푸드코트의 아기 의자 비치 공간 같았다.
보호자 3명에 아이만 5명. 집 안은 군부대로 치면 1개 분대다. 과거엔 오둥이 부모에 김 대위 부모님, 아이돌보미까지 최대 5명이 아이들을 돌봤다. 그러나 김 대위 아버지가 해외로 발령 나고 엄마 서혜정 소령(33)이 지난해 11월 교육을 받으러 대전으로 가면서 현재는 김 대위 어머니를 ‘분대장’으로 3명이 아이들을 돌본다. 서 소령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에게 평일에 못 해줬던 걸 주말에 집중적으로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34년 만에 태어난 오둥이는 ‘국민 오둥이’가 됐다. 승합차, 기저귀, 반찬 등 각계 지원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관심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 대위는 “‘군인이 저런 지원을 받아도 되느냐’며 민원이 이어져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부부는 이 같은 여러 난관과 오둥이 육아로 인한 체력적 부담을 아이들 웃음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5명이 번갈아 깨다 보면 하루 5시간도 채 못 잘 때가 많다는 김 대위는 “마음 편하게 자보는 게 소원”이라면서도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고 웃는 모습을 볼 때면 피로가 풀린다”며 웃었다. 김 대위에게 물었다. 자녀 계획이 또 있을까. “현재까지는 없어요. 현재까지는요.”(웃음) 서 소령은 “내가 오둥이를 힘들게 낳아 남편이 쉽게 말하진 못하지만 남편은 오둥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쯤 여섯째를 낳고 싶어 한다”고 귀띔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부부는 “각자 가치관과 사정이 있는 만큼 함부로 조언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다둥이 부모만의 행복을 자랑했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간에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더라고요. 오둥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전우애는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오둥이를 낳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힘든 점도 분명 많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서 소령)
경북 울릉군에 있는 73㎡(약 22평)짜리 군 관사. 결합한 3개의 매트리스가 놓인 작은 방에 매일 여섯 식구가 뒤엉켜 잔다. 해군 1함대사령부 118조기경보전대 소속 김민호 상사(39)와 고유리 중사(34) 부부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 시간 전후 다흰(9·여), 다겸(7), 다울(6·여), 다봄(4·여) 등 1남 3녀를 키우며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부는 초임 하사 시절 첫 근무지였던 천지함(군수지원함)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기관부 소속으로 함정 생활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가까워진 둘은 2015년 6월 결혼했다. 결혼 전엔 아이 셋을 갖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고 중사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외동아들로 자란 남편이 다자녀를 원했고 나 역시 한 명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사실 넷째는 의도한 건 아니었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셋도 키우는데 넷은 못 키우겠냐 싶어 걱정은 없었다”고 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고 중사가 넷째를 임신했을 때 김 상사가 함정 근무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독박 육아’를 하게 된 것. 그는 “만삭일 때도 혼자 세 아이를 돌봤다. 그때가 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도 빨래와 집 정리를 하고 나면 자정 무렵에야 부부는 잠이 든다. 둘만의 시간은 일주일에 한두 시간도 갖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둘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고 중사는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기에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라며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까지 기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느덧 서로 의지하며 부부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맏딸 다흰이는 학교가 끝나고 하교할 때 동생들을 일일이 챙긴다. 셋째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막냇동생이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도 항상 옆에 있어 준다. 고 중사는 “네 살 다봄이도 언니 오빠를 보고 따라 하면서 스스로 옷을 입는다”며 “하루 중 가장 바쁜 아침 시간에도 아이들이 앞다퉈 엄마를 도와줘 참 고맙다”고 말했다.
근무와 육아로 고된 생활에도 김 상사는 퇴근 후 문 앞에서 아이들이 반겨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고 중사는 “아이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격오지로 분류되는 울릉도 근무를 자원한 것도 아이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사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고 중사는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친구들과 자연에서 뛰노는 걸 지켜보면 근무지를 잘 선택했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5월엔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독도를 망원경을 통해 직접 보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올해는 지난해엔 멀리서만 봤던 독도를 아이들과 함께 직접 가볼 예정이다.
다자녀 부모이지만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는 요즘 젊은 부부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섣불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하지 않았다. 고 중사는 “육아휴직 등 군 인사제도 덕분에 그나마 네 명을 키우는 게 가능했다”면서 “친정이나 시댁에서 육아를 도와주지 않고는 젊은 부부가 아이 한 명 키우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래도 김 상사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또 다른 행복을 많은 부부가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아들-딸 둘씩 갖자는 계획 30대 초반에 이뤄 매일 아침 등원 전쟁에도 “아이들 웃음에 행복”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1일 오전 8시 공군작전사령부가 있는 경기 평택 오산기지 내 관사 놀이터. 연보라색 운동복을 입은 아이 3명이 빨간 야구 모자를 쓴 황해일 공군 대위(32)의 구령에 맞춰 마무리 체조에 한창이었다. 찬성(5), 아정(4·여), 우승(3)이는 팔 벌려 높이뛰기, 다리 스트레칭 등 어린아이들에겐 고난도인 동작도 비교적 정확히 따라 했다. 군인 자녀다운 절도 있는 동작과 “까르르” 하는 아이들 특유의 웃음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아이들은 아빠가 챙겨 온 우유를 배식받은 뒤 “건강을 위하여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놀이터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아침 운동은 이렇게 평소 하던 대로 마무리됐다.
황 대위는 “날이 좋을 때 아이들과 아침 산책을 하곤 한다”며 “아이들이 꽃, 고양이, 청설모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그 순수한 얼굴을 볼 때 참 행복하다”고 했다. 황 대위 집인 관사 아파트 7층에선 지난해 12월 태어난 막내딸 자영이가 수유쿠션 위에 누워 모빌을 보며 한창 옹알이 중이었다.
황 대위는 아내 이은혜 중사(33)와 2017년 근무 중 만났다. 사귄 지 3개월 만인 그해 9월 혼인신고부터 해버렸다. 황 대위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다. 많은 적들 사이에서 특수작전을 통해 만남을 이끌었고, 3개월 만에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보였다.
두 사람은 2018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첫째를 낳았고, 30대 초반에 4남매 부모가 됐다.
“연애 초반 치킨집에서 닭다리를 뜯으며 아들 둘, 딸 둘 낳자고 얘기했는데 아내도 흔쾌히 동의하더라고요. 약속이 거짓말처럼 그대로 실현돼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매일 오전 8시부터는 ‘등원 전투’가 시작된다. 올해 3월 1일부터 육아휴직 중인 황 대위의 진두지휘 아래 아이 3명을 관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한 ‘임무’가 이날도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부부는 산책할 때 입은 아이들 옷을 벗기고 한 명씩 씻기더니 유아 식탁 의자 3개에 3명을 앉혀 유부초밥을 먹였다. 막내가 울자 찬성이와 아정이는 밥을 먹다 말고 쏜살같이 옆으로 가 노래를 부르며 달랬다. 막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아침 식사 후 수박을 먹던 아이들은 “한글 놀이 하자”며 아빠를 졸랐다. 황 대위는 익숙한 듯 부엌 한편에 붙은 한글 벽보 앞에 서서 글자를 짚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거너더러머버서어저처커터퍼허허허허허.” 아빠의 “허허허허” 소리와 아이들의 “까르르” 소리가 뒤섞였다. 황 대위 발톱이 주황색 사인펜으로 색칠돼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원 전쟁’은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황 대위는 네 아이를 돌보느라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이 중사는 전투복을 입은 채 아정이 머리를 묶어주고 아이들 옷을 입히느라 분주했다. 아정이는 이날 사진 촬영을 위해 휴직 중 오랜만에 전투복을 입은 아빠를 보고 “전투복 입었네”라며 웃었다. 찬성이는 “엄마 아빠가 군인이어서 좋다. 전투복 입고 모자까지 쓸 때 가장 멋지다”고 했다.
이 중사는 다자녀 육아를 위한 단축 근무로 오전 9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 반 퇴근한다. 점심시간이면 집에 와 막내에게 모유를 수유하고, 점심을 먹은 뒤 부대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많아 하루 6번, 주말이면 하루 종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탓에 건조기 모터가 타버린 적도 있다. 식비는 아이 3명만 해도 일주일에 30만 원 이상 든다. 그럼에도 부부는 여섯째까지 낳을 생각이라고 했다.
“저희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군인답게 최초 계획대로 실행하고 있는 거죠.”(이 중사)
“아이가 한 명, 두 명, 세 명일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다 다르더라고요. 아이들 에너지를 감당하려고 저도 더 관리하게 되는 장점도 있고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황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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