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8등분했을 때 지상으로부터 7단계까지 구름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지켜온 팬텀은 다음 달 7일 퇴역식을 약 한 달 앞두고 이날 47년 만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제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마지막 남은 F-4E 팬텀 4기 편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이 모은 방위성금으로 1975년 구매한 F-4D 5대에 붙여준 ‘필승편대’란 이름을 물려받았다.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국민들은 부족한 국방 예산을 대신해 십시일반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 원 중 71억 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서울 등 12개 주요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들에게 신고식을 했다. 현재 공군은 성능 개량형인 F-4E 10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팬텀의 마지막 임무에 동행하기 위해 사전 교육과 건강검진을 받았다.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도 둘렀다. 이후 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G-LOC)을 막기 위한 G-슈트, 구명정이 달린 하네스, 산소공급과 통신장비 연결을 위한 헬멧 등을 챙겼다. 장구류 무게만 약 15㎏였다.
편대를 이끄는 1번기만 전·후방 조종사 모두 베테랑으로 편성됐고, 2~4번기 후방석에엔 기자들이 탑승했다. 전천후 전폭기인 팬텀은 F-15 전투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2인승 전투기였다. 당시 게임체인저로 불렸던 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해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팬텀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이성진 대구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대령)은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를 비롯해 최대 8480㎏이라는 어머어마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팬텀이 떴다하면 북한이 도깨비 위용에 짓눌려 아예 비행기 자체를 띄우지 않았다”라며 “후방석은 좁은 조종석(Cockpit·콕핏), 제한된 시야, 비행 중 지속적으로 레이더 및 계기판 관측 등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4번기는 49년 전 방위성금헌납기의 모습을 재연해 정글무늬 도장을 새로 했고, 나머지 2기는 회색 바탕에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란 기념 문구를 새겼다.
문구 양 옆엔 팬텀의 고유 캐릭터인 스푸크(도깨비) 문양이 새겨졌는데, 왼쪽엔 빨간마후라와 태극무늬를 더한 스푸크가, 오른쪽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을 입은 스푸크가 위치했다. 스푸크는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 팬텀을 운용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았다. 팬텀을 후방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서양의 전통적인 유령(Phantom)과 흡사해 보여 생겨난 캐릭터다. 밑으로 처진 수평꼬리날개는 유령이 눌러쓴 모자로, 두 개의 엔진 배기구는 유령의 두 눈처럼 보인다.
활주로를 마주한 팬텀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기체가 이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8초. 10시 정각, 필승 편대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이 시작됐다.
항로에 들어서기 위해 급선회 기동을 하자 원심력에 의해 중력가속도(G)가 발생했다. 약 3G(중력의 3배) 가량의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그러자 G슈트에 공기가 자동으로 주입됐다. 공기압을 이용해 하체에 혈액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기체가 거의 70도 가량 왼쪽으로 기운 상태라, 캐노피(조종석 덮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원 시내가 정면으로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탓에 태양열은 조종석을 뜨겁게 달궜다. 4번기 전방석 조종사인 박종헌 소령은 “여름에 비행하다보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뜨겁다”라고 했다.
이륙 후 편대는 핑거팁 대형(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을 유지하면서 4번기만 좌우로 기동하며 상황에 따라 레프트 핑거팁, 라이트 핑거팁 대형을 만들었다. 기체간 간격을 불과 2~3m. 옆 기체 조종사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서해대교와 평택 삼성공장을 지나 옛 성환 비상활주로 자리에 다다랐다. 10시 40분쯤 캐노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신록의 태백산맥은 장관이었다.
팬텀은 냉전시대에 동해안에서 구소련 전력을 차단하며 맹활약했다. TU-16(1983), TU-95(1984) 폭격기와 핵잠수함(1984)을 상공에서 식별해 차단했다. 1998년 2월엔 러시아 IL-20 정찰기에 대한 전술조치를 하기도 했다.
포항·울산·부산·거제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전초기지였던 한반도 남동부 주요 도시들을 거친 필승편대는 대구로 기수를 돌리기 위해 남에서 북으로 급선회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폭탄 투하를 위해 급강하와 급상승 기동을 반복하는 실제 폭격 훈련에서 조종사들이 극복했을 역경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기지 이륙 후 1시간 46분이 지나서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 착륙했다. 총 비행시간이 1300시간에 이르는 4번기 전방석 조종사 박 소령 역시 “평소 임무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이라며 “고별 비행인 만큼 무척 힘든 임무”라고 말했다.
전투기에 기름을 채운 후 필승편대는 팬텀의 고향인 공군 대구기지에서 오후 3시 10분에 다시 날아올랐다. 대구기지는 1969년 F-4D가 미국·영국·이란에 이어 네번째로 도입됐을 당시 최초의 팬텀 비행대대가 창설된 곳이다. 2005년 F-15K가 도입돼 팬텀의 공대지 타격 역할을 물려받기 전까지 팬텀의 주 기지 역할을 했다.
대구기지를 떠나고 10분 가량 흐르자 우리 공군력의 막내인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2기가 합류했다. 팬텀과 KF-21은 델타(Δ) 대형을 이뤘다. 팬텀 편대장 ‘파파1’이 선두에, KF-21이 좌우 꼭짓점에 섰다. 가운데에선 방위성금헌납기 도색을 한 팬텀 4호기가 비행했다. F-15K 2기는 국토순례비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 순간을 촬영했다. 공군의 과거(팬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 하늘에 모인 역사적 장면이었다.
1969년 도입 당시 팬텀기는 지금의 스텔스 전투기 F-35와 비견될 수 있는 미국 첨단 항공 기술의 집약체였다. 2005년 도입된 F-15K는 타우러스 미사일로 대전에서 평양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킬체인의 핵심 기체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공동개발 계약 이행 문제로 논란이 됐지만 KF-21은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향후 팬텀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될 핵심 전력이다.
세 기종은 경남 합천에서 사천을 거쳐 전남 고흥까지 약 20분간 함께 날았다. 눈 아래로는 삼천포대교, 여수 충무대교, 한려수도가 펼쳐졌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요.” KF-21은 고흥 상공에서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다. 이때 팬텀에선 축포를 쏘듯 플레어를 발사했다.
팬텀 편대는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소흑산도)를 향했다. 팬텀은 19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서 활약했다. 가거도에서 서해를 따라 북상한 팬텀편대는 이날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군산앞바다에서 수원기지를 향해 동쪽으로 마지막 급선회에 하며 플레어를 터뜨렸다. 대구기지에서 이륙한지 약 1시간 30분 만에 공군 수원기지에 착륙했다. 감속을 위해 기체 꼬리 쪽에서 펼쳐진 낙하산 ‘드래그슈트’가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F-4D 도입으로부턴 55년, 현재까지 쓰이는 F-4E 도입으로부턴 49년 만이 지났다. 공군 관계자는 “다음달 퇴역식에 해외 취재진 100여 명이 취재 신청을 했다. 외국 언론도 팬텀에 대한 관심이 크다”라고 귀띔했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서 전시되거나 적 세력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장비들을 혼란시키고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로서 활주로 등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날 방위성금헌납기 당시 모습으로 도색한 팬텀을 몰았던 박종헌 소령은 “1975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날아오른 필승편대의 조국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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