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곡창지대 야당 호남 의원들이 양곡법 개정 밀어붙이는 까닭은?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5월 18일 11시 46분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을 사용해 추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을 사용해 추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21대 국회 임기 중 양곡관리법(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을 강행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은 법 개정으로 농가 소득 안정과 원활한 농산물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여당과 전문가들은 특정 품목 쏠림 현상과 농업시장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의 경우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기존 개정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농안법 개정안 취지도 유사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야당 입장에선 양곡법·농안법 개정 강행이 쌀 농가가 많은 호남 지역 민심을 잡을 수 있는 데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 통과가 무위에 그친다 해도 잃을 게 없는 ‘꽃놀이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 양곡법·농안법 개정안 강행 처리할 듯

여권에선 야권이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겉으로는 ‘농가 소득 안정’을 내세우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추가로 유도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횟수를 늘리고 농민 반감을 키우기 위한 ‘흠집 내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거부권을 9번 행사한 윤 대통령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이어 양곡법 개정안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면 11번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4월 기존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민주당은 ‘의무 매입’ 규정을 완화하는 대신 목표가격제 도입을 뼈대로 한 새로운 양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농안법 개정안은 농산물 가격이 ‘기준 가격’ 밑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생산자에게 차액을 지급하는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이 핵심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합의가 불발되자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 11명과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 야권은 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정치권에선 야권이 5월 28일 본회의에서 두 법률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여야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하고 있다. 농해수위 위원인 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4월 18일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대안 없는 반대만 하지 말고 21대 국회 임기 내에 농산물 가격 안정법 등 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라”고 촉구했다. 의무 매입 조항이 있던 기존 개정안과 달리 이번 개정안은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방식이라 정부로서도 거부할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은 “이번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개정안과 방법·수단만 약간 다른 유사 동종법”이라며 “농민 표심이 크게 작용하고 벼 농가가 많은 호남에 지역구를 둔 야당 의원들이 중심이 돼 시장을 왜곡할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식품부 “쌀 매입·보관비만 年 3조 원”

경기 용인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 중인 쌀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경기 용인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 중인 쌀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양곡법 개정안을 놓고는 지난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과 대동소이하다는 평가가 많다. 앞선 법안은 “쌀 초과 생산이 3~5% 이상이거나 햅쌀이 나오기 직전인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한 경우 정부가 농업협동조합 등에 매입하게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번 개정안도 쌀에 대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등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것은 비슷하나, 매입 조건을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로 규정했다. 양곡법 개정안에 따르면 쌀값 폭·등락 기준은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심의를 통해 정해진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생산자 단체와 유통인 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쌀 매입·판매 기준이 되는 가격을 정하자는 것이다. 쌀 생산량이나 시세를 기준으로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앞선 개정안에 비해 ‘의무 규정’을 완화했다는 게 야권 측 설명이다. 다만 쌀값이 어느 정도 낮아졌을 때 정부가 매입할지 근거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기존 법안보다 오히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안법은 양곡과 채소, 과일 등 특정 품목에 대해 ‘농산물 가격안정제’를 도입하는 게 뼈대다. 농산물 가격이 ‘기준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차액의 일부 혹은 전부를 농가에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생산비·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한 기준 가격은 ‘농산물가격안정심의회’에서 심의해 정하게끔 했다. 야당은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으로 급격한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른 농가의 소득 감소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특정 품목 쏠림 현상으로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 악순환이 일어나 지원 여부를 놓고 농가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의 핵심 근거는 두 개정안이 농업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 보관비만 연간 50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나고 매입비까지 합친 총비용은 3조 원을 넘어선다”면서 “(두 개정안이) 시장의 자율적 조정 기능을 훼손해 생산구조를 왜곡할 수 있고, 기준 가격이 높거나 농사 편의성이 있는 품목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식습관 변화로 국민의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쌀 생산량도 감소 추세지만 소비 급감을 따라가지 못해 매년 과잉 생산되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벼 대신 국내 자급률이 낮은 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로 쌀 생산량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돼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사들일 경우 상당수 농가가 다시 벼농사로 유입될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 판단이다. 논농사는 기계화율이 99% 이상으로 영농 편의성이 높은 데다, 정부가 부족한 수입까지 보완해준다면 굳이 다른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쌀 매입과 보관에 들어갈 막대한 예산도 문제다. 농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2030년에는 쌀 매입비로만 2조7000억 원, 보관비까지 합하면 3조 원 넘는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정된 농정 예산이 과잉 생산된 쌀을 사서 보관하는 데 집중되면 미래 농업 육성에 필요한 재원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 “미래지향적 농업 예산 확보 어려움”

전문가 사이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민경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는 5월 8일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매년 쌀 매입과 가격 안정에 투입되는 예산 소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쌀 시장 격리 의무화에 따른 막대한 재정 투입은 축산업 등 다른 품목 예산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판식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앞으로 청년 농업인 및 스마트 농업 육성 등에 집중 투자가 필요한데, 두 개정안은 미래지향적 농업을 위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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