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취임후 10번째 법안 거부권 행사… 대통령실 “여야 합의없어 헌법 파괴”
野 “주권자 기만 정권 말로 기억하라”… 28일 본회의서 재의결 추진 밝혀
與 유의동도 “찬성” 이탈표 차단 비상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법이 7일 정부로 이송된 지 14일 만으로, 윤 대통령 취임 후 10번째 법안 거부권 행사다. 장외투쟁 등 전면전을 예고한 야당이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회로 돌아온 특검법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정국이 정면 충돌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을 알리며 “특검법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고 여야가 수십 년간 지켜온 삼권분립의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삼권분립 원칙하에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속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라며 “그 중대한 예외인 특검 제도는 행정부 수반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데 (민주당이)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도 했다. 또 “특검법은 사건 대국민 보고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실시간 언론 브리핑을 하도록 했다”며 “법상 금지된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는 잘못된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 경위를 가리는 해병대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역시 공수처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라며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으면 대통령이 먼저 특검을 제안한다고 밝히지 않았느냐”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5개 야당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은 (대선 때)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말했다”며 “스스로 범인임을 자백했으니 이제 범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언급하며 “그런 궤변으로 주권자를 기만하고 주권자에 도전했던 그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기억하라”고 주장했다. 탄핵 추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28일 재의결에 실패하더라도 예고했던 대로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28일로 예상되는 국회 본회의 재표결을 앞두고 안철수, 김웅 의원에 이어 유의동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추가로 밝히면서 이탈표 차단에 비상이 걸렸다. 수도권 낙선 의원이 “양심에 따라 표결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이탈표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원내지도부는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접촉하며 이탈표 방지를 독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일방적 특검, 삼권분립 파괴” 野 “거부권 남용이 위헌”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충돌] 정진석, ‘헌법’ 9번 언급 거부권 설명 尹, 공수처장 임명 재가 ‘先수사’ 의지 이재명 “尹정권 파도앞 돛단배 신세”… 25일 야권 대규모 장외집회 등 공세
“이 법에 따른 수사 결과가 공정하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뒤 용산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으로 내려온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같이 밝히며 법안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강조했다. “우리 사법 시스템 어디에도 고발인이 자기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고르도록 하는 모델은 없다”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물 중 한 명을 특검에 임명해야 하는 조항 자체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보장돼야 할 대통령의 특별검사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했다”고 지적한 것.
반면 야당은 높은 특검 찬성 여론을 등에 업고 “거부권 행사가 위헌이자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 선포”라고 반발하며 장외투쟁 등 총공세에 나서면서 극심한 대치 정국이 예상된다.
● 비서실장, ‘헌법’ 9차례 거론…尹 의중 반영
정 실장이 거부권 행사의 첫 번째 이유로 “특검 법안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은 대통령 의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브리핑에서 ‘헌법’을 9차례 언급했다. 고위 관계자 발언까지 포함하면 모두 12차례다. “헌법 수호자인 윤 대통령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깔렸다.
정 실장은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속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라며 “ 특검 제도는 그 중대한 예외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국회가 25년간 13회에 걸친 특검법을 예외없이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 온 것도 이 같은 이유”라며 “야당이 일방 처리한 특검법은 삼권분립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여야가 수십 년간 지켜온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했다”고 비판했다. 정 실장은 “따라서 재의요구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채 상병 관련 수사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도 거부권 행사 이유로 거론됐다. 정 실장은 “공수처는 민주당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위한 사실상의 상시 특검’으로 일방적으로 설치했던 수사기관”이라며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 임명에 동의하며 한쪽에서는 공수처를 무력화시키는 특검법을 고집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맞춰 윤 대통령은 이날 여야가 합의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안을 이날 재가했다. ‘선(先) 공수처 수사, 후(後) 필요시 특검론’에 힘을 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뒤 오후 이를 재가하는 형태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때도 이 같은 방식을 택했다.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여론 부담을 인식한 조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 李 “尹 정권, 파도 앞 돛단배 신세”
민주당은 야권과 연대해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총공세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의 권한도 한도가 있는 것”이라며 “가족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정과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헌법이 준 권한을 남용하면 이게 바로 위헌이고 이게 바로 위법이고 이게 바로 부정”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국민의 분노, 역사의 심판 앞에 윤석열 정권은 파도 앞에 돛단배와 같은 신세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윤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이승만의 말로를 기억하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대통령 자신과 배우자의 수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 위헌적 권한행사로 탄핵 사유에 해당됨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25일 시민단체를 비롯한 야권과 함께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어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위한 여론전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채 상병 특검법은 22대 국회에서 통과가 될 때까지 발의하고 또 발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거부권을 11번 행사한 바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탄핵이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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