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숙원 사업인 ‘법관 증원법’이 21대 국회에서 결국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29일 21대 국회가 폐원하지만 마지막 본회의 전 법제사법위원회가 끝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간 여러 차례 재판 지연 문제를 질타했던 국회가 정작 재판 지연 해법은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법관증원법)은 지난 7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안을 의결해야 할 법사위 전체회의가 전날(28일) 마지막 본회의 전까지 끝내 열리지 않으면서 본회의 문턱조차 밟지 못한 채 폐기된다.
법관증원법은 판사 정원을 향후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증원해 현재보다 370명 많은 3584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는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사법부가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을 이어 왔다. 그러나 검사 증원 연동 및 각종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정작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한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질 높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사건 수는 2010년 대비 7.4% 증가했다. 2019년 기준 법관 1인당 사건 수도 독일의 4.8배, 일본의 2.8배에 이른다.
매년 임용되는 신규 법관은 통상 130명 내외지만, 정원이 동결될 경우 올해 법관 결원인 109명 이하의 법관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30명 정도 적게 임용돼 전국 법원에서 민·형사 단독 재판부가 그만큼 사라지는 셈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130명 내외의 신규 법관을 뽑아야 퇴직자, 휴직자, 연수자 등을 고려했을 때 현상 유지가 된다”며 “지금은 정원 때문에 두 자릿수밖에 못 뽑는 상황이고 판사가 없으니 재판부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법조경력이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 경력 법관 충원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다.
한 재경지법 일선 판사는 “일각에서는 사직자 규모에 따라 신규 임용을 해도 예년 수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숙련된 법관이 사직하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가 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역량이 떨어져 재판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직자가 적고 신규 임용이 늘어서 사건 처리도 많이 되고 노하우도 전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다음 국회에서 신속하게 법관증원 필요성을 설득해 입법이 재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증원법은 재판 지연으로 힘들어하시는 국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법안으로 21대 국회에서 법사위 소위까지 통과했음에도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돼 안타깝다”며 “22대 국회에서 법관증원법이 최우선으로 처리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