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 연장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인공지능(AI) 기본법 등 주요 산업 진흥법안들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무더기로 폐기됐다.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확산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22대 국회에서는 산업계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날(29일) 21대 국회 임기 종료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된 법안은 1만6379건에 달한다.
특히 K-칩스법 등 산업계 숙원 입법이 무산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22대 국회 임기가 이날부터 시작했지만 원 구성 협상을 거쳐 상임위가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발의 단계부터 다시 밟아야 하는 만큼 이른 시일 내 입법을 기대하기 어렵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대표적인 산업계 법안은 반도체·2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시설투자비의 15~25%, 연구개발(R&D)비의 30~50%를 다시 돌려주는 내용의 K칩스법이다. 올해 일몰이 예정되어 있어 2030년까지 법 적용을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622조 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뒷받침하기 위해 발의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망 구축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개선하고, 국민 피해 보상·지원을 법제화하는 등 전방위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미국, 대만, 일본 등 정부는 반도체 업체들에 수조원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는 26조 원 중 17조 원이 저리 대출에 해당하는 등 간접 지원 중심이다. 그마저도 입법 미비로 국내 업체들의 공장 증설 등 투자가 늦어지면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더욱이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전날 파업을 공식화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어 적극적인 입법 지원이 절실하다.
2022년 말 발의된 AI 기본법(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도 폐기됐다. AI 기본법은 고위험 영역 AI 고지 의무 부과 등 규제뿐만 아니라 AI 산업 육성과 활용 지원 등 진흥을 규율한 법안이다.
AI 기본법이 제정되어야 관련 정부 조직을 신설하고 예산을 빠르게 집행할 수 있다. 한국보다 AI 기술이 앞선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등은 이미 관련 법규를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10년 넘은 노후 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구매하는 경우 개별소비세 등을 70% 감면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처리 요구가 높았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개소세 인하 방침을 밝히고 입법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자동차 내수 시장은 고금리, 고물가 등 영향으로 침체돼 소비 진작 정책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내수 판매는 44만 3795대로 전년 동기(49만 6887대) 대비 10.7% 감소했다.
이 밖에도 원전 폐기물 처분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 관리 특별법’,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이 폐기되어 22대 국회에서 다시 처리해야 할 산업계 법안으로 꼽힌다.
경제단체들은 22대 국회에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미중 갈등에 따른 기술패권 경쟁은 우리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22대 국회는 우리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초당적인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대의기관으로써 일하는 국회, 민생을 살리는 국회, 경제활력을 높이는 국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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