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의 창과 방패 ‘전파 공격’…드론·항공기 납치도 가능

  • 뉴시스
  • 입력 2024년 6월 1일 17시 44분


GPS 교란 등 전파공격, 현대전 핵심 전략자산으로 대두
러시아·이스라엘·이란 등도 전파 공격 활발…드론·미사일까지 속인다

ⓒ뉴시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기지로 향하던 미국의 무인기(드론)가 적성국인 이란의 영토에 착륙해 나포된다. 레이더 위치정보가 조작돼 이란 영토를 아군 기지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런던을 향해 날아가던 영국의 민항기가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크림반도에 잘못 착륙하고, 국방장관이 탄 군용의 통신이 마비돼 위험한 육안 수동 조종으로 30분 이상 비행하게 된다. 전파 공격으로 인해 레이더·통신 시스템이 마비되면서다.

21세기 현대전에서 ‘전파 공격’이 핵심 공격·방어 무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첨단장비들이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과 같은 GNSS(위성항법시스템)나 레이더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GPS 신호를 교란하는 등의 전자전은 적국의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거나, 반대로 적국의 무인기 공격을 방어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모두 활용되고 있다.

◆3일 연속 전파 공격 감행한 北…가장 단순한 ‘재밍’ 활용 추정

북한이 지난 29~31일 사흘 연속으로 서해 일대에서 GPS 전파 교란 공격을 감행하면서 전파 공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GPS 전파 교란 공격은 GPS가 수신하는 진짜 신호보다 높은 세기로 방해 전파를 송출해 정상적인 GPS 이용을 방해하는 공격 기법을 말한다. GPS 신호가 2만200㎞ 상공이라는 먼 곳에서 겨우 25W 출력으로 송신돼 세기가 매우 약하다는 허점을 이용한 공격이다.

GPS 교란 공격은 GPS 신호보다 더 강한 잡음 신호를 보내 수신기 사용을 막는 ‘재밍’, GPS 위성항법 정보를 빼낸 뒤 다른 정보로 조작해 재방출함으로써 GPS 사용자의 위치를 착각하도록 기만하는 ‘스푸핑’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이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방식인 재밍 공격을 주로 활용한다. 공격용 장치 제작도 비교적 간단하고 공격 방법도 고출력 신호를 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GPS 공격에 곧바로 대응해 작전에는 피해가 없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군용 GPS가 민간 장비보다 교란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고, 일시적인 영향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GPS를 쓰지 않는 다른 항법장치를 활용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현대전 전자 공격은 더 살벌…드론 나포하고, 미사일 공격 막는다

북한의 단순한 공격과 달리 실제 전시 상황에 놓여있는 국가들은 훨씬 더 강하고 위험한 전파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이란이 미군의 무인정찰기 드론에 전파 공격을 가해 나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미국 현지 매체 등은 이란 측 엔지니어의 주장을 인용해 이란이 강한 전파로 드론의 GPS 좌표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기체를 나포했다고 전한 바 있다. 당초 아프가니스탄 미 공군기지로 향하던 드론의 GPS를 속여 이란 영토를 공군기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론이 수신하는 기지 귀환 GPS 신호보다 강한 전파를 보내 좌표를 교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도 중앙아시아~동유럽에 걸친 광범위한 전파 공격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처럼 단순한 재밍이 아니라 스푸핑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GPS 신호 교란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사용 중인 미국의 유도미사일 적중률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러시아는 자국과 동유럽 사이에 있는 발트해 연안에도 GPS 교란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발트해 상공을 오가는 민항기부터 각 국가의 요직을 태운 군용기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 항공기가 에스토니아 타르투 공항으로 향하다가 GNSS 문제로 헬싱키로 회항하는가 하면, 영국 런던으로 향하던 브리티시항공의 항공기가 크림반도에 잘못 착륙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국 국방장관이 탑승한 공군기가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 인근 발트해 상공을 비행하던 중 약 30분 동안 GPS 전파 방해를 받아 위험한 육안 수동 비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마스, 이란 등과 분쟁 중인 이스라엘은 전파 교란을 자국 영토를 방어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드론 공격에 나서자 GPS 전파 방해신호를 쏴 드론의 행선지를 혼동시키는 식이다.

이같은 전자전이 군 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적지않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민항기의 항로 오류 뿐만 아니라 GNSS 기반의 민간의 내비게이션, 전자결제, 택시, 차량 공유, 배달, 데이팅앱 등도 전파 공격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의 미사일·드론 방어용 전파 교란 작전으로 인해 지난달 초 텔아비브 일대에는 GPS 위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아비브 시민들은 GPS를 작동하면 레바논 베이루트 일대로 나타나는 식이었다.

전파 공격은 끊임없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벌어지는 셈이다. 북한이 최근 반복적으로 GPS 교란 공격을 시도하는 것도 우리나라 방패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현대전에서도 전파 공격의 위력이 증명되고 있는 만큼 보다 철저한 대응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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