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기 갈등’ 5년반 만에 봉합
교신 주파수 우선순위 지정… 군함-항공기간 안전거리도 유지
日, 자위대함 욱일기게양 인정 요구
한국 반대로 합의문에서 제외
한일 간 ‘초계기 갈등’이 일어난 지 5년 반 만인 1일 양국이 국방수장 회담을 열어 도출한 재발 방지 합의문의 핵심은 소통 강화였다. 2018년 12월 20일 동해상에서 일어난 우리 해군 함정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해상초계기 P-1 간 갈등이 소통 문제로 서로에게 공격 의도가 있다고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는 양국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함정·항공기 간 안전거리 유지” 합의
대한민국 해군-일본 해상자위대 간 합의문엔 “소통을 위해 CUES(큐스·해상 조우 시 신호 규칙)의 ‘무선통신계획’ 항목상 주파수를 기본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호출 및 응답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큐스는 각국 해군 함정 및 항공기가 해상에서 우연히 만날 경우 안전을 확보하고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에서 2014년 합의한 국제 규칙이다. WPNS에는 한미일, 중국 등 25개국이 가입해 있다.
큐스엔 해상 조우 시 사용 가능한 무선통신 주파수 10여 개가 우선순위 없이 나열돼 있다. 초계기 갈등 당시 해군과 해상자위대는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통신을 시도했지만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사용하면서 양측 모두 응답을 듣지 못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주파수 우선순위를 정한 만큼 비슷한 상황에서 소통에 실패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양국 해군(해상자위대) 본부 사이에 구축된 기존 채널을 활용해 소통을 강화하고 양국이 통신 훈련을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합의문 중 눈길을 끈 건 ‘큐스의 함정·항공기 간 안전거리 유지 항목과 지휘관이 피해야 할 행위 관련 항목을 준수한다’는 부분이었다. 큐스에 규정된 ‘지휘관이 피해야 할 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사격 통제 레이더 등의 조준 행위’다.
초계기 갈등 당시 우리 측은 일본 초계기가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근접 위협 비행을 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우리 측이 사격용 레이더로 초계기를 조준했다고 주장해 왔다. 합의문에 한일 양쪽 입장이 담긴 셈. 한일은 지난해 6월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연 양자 회담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팽팽한 양측 입장을 그대로 두고 갈등을 봉합했는데, 합의문에 큐스 세부 규정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를 반영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日, 자위대함의 욱일기 게양 요구”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회담 직후 한국 취재진을 만나 “(합의문 도출을 계기로) 한일 신뢰 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일 모두 내부에선 불만이 감지됐다. 해상자위대의 한 간부는 NHK에 “(한일 국방당국 간) 교류가 재개돼도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현장 자위대원에게 앙금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한일은 회담 직후 공동 발표문을 내고 국방 차관급 회의를 연례화하는 등 국방 당국 간 교류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우리 군 관계자도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합의한 것으로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해 봉합한 갈등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가 회담 준비 과정에서 한국에 해상자위대함의 자위함기 게양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의 요미우리신문 보도도 나왔다. 자위함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旭日)’ 모양을 사용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측이 강경하게 반대해 합의문에 이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상대국이 있는 협의 내용을 말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1일 한일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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