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 등 최근 연쇄 도발에 맞서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중단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수일 내 재개하는 등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확성기 재배치 등 대북 압박을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체결한 판문점 선언이나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위한 국무회의 절차도 밟아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오물 풍선 10여 개가 인천국제공항 안팎에 떨어져 1일 오후 항공기 10여 대의 이륙이 54분간 지연된 데 이어 2일 오전에도 이착륙이 37분간 통제됐다. 북한은 김강일 국방성 부상 명의로 낸 이날 밤 담화에서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면서도 민간 단체가 대북 전단을 다시 보내면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정부 관계자는 “책임을 우리 정부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담화에서 오물 풍선 양을 15t, 3500여 개라고 밝혔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한 뒤 브리핑을 열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GPS 교란 행위는 정상 국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몰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도발 행위”라며 “회의 참석자들은 정부가 예고한 대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수일 내 재개하기로 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비례하는 대응으로 검토된 대북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는 작업이 곧바로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미 경고를 했기 때문에 확성기 재개 조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할 것”이라고도 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통령실은 판문점 선언 무효화나 9·19 남북군사합의 추가 효력 정지를 위한 절차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은 1일 밤∼2일 낮까지 지난달 28∼29일(260여 개) 살포량의 3배에 달하는 720여 개의 오물 풍선을 한국 전역으로 날려 보냈다고 군이 2일 밝혔다. 1일 오후 8시부터 시간당 20∼50개 정도로 2일 오후까지 오물 풍선이 서울 도심과 경기·충청·경북 지역에 날아들었다. 북한은 GPS 전파 교란 공격을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이후 닷새 연속이다.
대북확성기, 30km까지 北주민-軍 동요 유발… “언제든 재개 준비”
[대북확성기 재개 검토] 정부 “北 감내하기 힘든 조치 착수”… 軍 “재개 지시땐 4시간내 즉각 가동” 北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 새 한미훈련-정부 전단살포도 거론 北 오물풍선 살포 잠정중단 담화에… 정부 “현재로선 대응방침 안바뀌어”
“지난달 31일 정부 입장을 예고한 대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한다.”
2일 오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뒤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에 선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의 브리핑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 김여정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 협박 상황을 설명하며 “우리 정부한테는 이런 더러운 협박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못 박았다.
북한의 ‘오물 풍선’ 연쇄 테러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에 맞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비롯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공언함에 따라 이르면 4일부터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군도 최전방 지역의 확성기 가동 태세 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언제든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준비와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일환으로 기존에 없던 군사 훈련 개념을 새로 도입해 새로운 한미 훈련을 진행하는 등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직접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北 심리전에 더 강력한 심리전 무기 대응
장 실장은 2일 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뒤 브리핑에서 “오물 풍선 살포나 GPS 교란과 같은 도발을 하지 말 것을 (북한에) 다시 한번 경고한다”며 “수준 이하의 구질구질한 도발이 반복될 경우 대응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대해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화된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게 아마 북측에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중단됐고 곧바로 방송 장비가 철거된 상태다.
정부는 ‘디데이’를 정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대북 확성기 외에 북한을 똑같이 힘들게 하는 여러 다른 조치도 검토 중”이라며 “비례성의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보다 훨씬 격조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북 확성기 외에 다른 ‘비례적 상응 조치’도 준비 절차를 마치는 대로 하나씩 실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군 소식통은 2일 “방송 재개 지시만 내려오면 3, 4시간 정도면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확성기부터 즉각 가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정식 확성기는 설치와 전력망 점검 등에 하루 이틀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야말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이라고 했다. 정부는 북한의 심각한 도발 때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2010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2015년), 4차 핵실험(2016년) 직후에도 방송을 전격적으로 내보냈다. 이후 중단 과정을 반복하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른 신뢰 조치로 확성기를 모두 철거해 현재까지 방송이 중단된 상태다.
2018년 철거 직전까지 최전방 경계부대(GOP) 일대 전방 지역 10여 곳에 고정식·이동식 확성기 40여 대가 설치 운용됐다. 지금은 모두 해체돼 관련 부대에 보관돼 있다. 고정식·이동식 확성기는 여러 대의 고출력 스피커로 이뤄져 20∼30km까지 인권 탄압 등 북한 내부 실상을 다룬 뉴스, 대한민국 발전상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홍보, 가요 등을 방송할 수 있다. 2017년 6월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자도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귀순 결심에 영향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어릴 적부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몰래 시청해 온 지금의 북한군 병사들에게 대북 확성기의 심리전 효과는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오물 풍선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책임이 마치 한국 정부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대북 정책을 바꿔보려는 그런 의도”라며 “시간을 끌지 않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살포 잠정 중단” 北, 책임 전가 노린 듯
북한은 대통령실의 대북 확성기 재개 방침이 알려진 뒤인 이날 밤 담화에서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행동이 철저히 대응 조치이기 때문”이라면서도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재개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부담스러워하는 대북 확성기 재개 방침에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우리 정부 조치의 김을 빼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 상황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떠넘기려는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대응 방침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부는 탈북민 단체에 전단 살포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일 이후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며 “드라마 ‘겨울연가’와 가수 임영웅의 노래가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5000개와 대북 전단 20만 장을 날려 보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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