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日, 사도광산 강제노역 미반영땐 세계유산 등재 반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7일 17시 21분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2022.4.7/뉴스1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2022.4.7/뉴스1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을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찬성할지에 대해 “향후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7일 밝혔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성실하고 부단하게 정중히 논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유네스코의 전문가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보류’를 권고한 상황에서 향후 한일간 물밑 외교전이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컨센서스(전원 동의)가 형성을 막지는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이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을 포함한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조치를 성실히 취한다면 한국이 나서 강력하게 등재를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하지만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은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에 고순도의 금·은을 생산하던 일본 최대 규모 광산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전쟁 물자 확보에 이용됐다. 일본은 사도광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대상을 ‘에도 시대’로 한정했다. 강제동원이란 역사를 감추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이코모스는 최근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 전략을 만들고 시설 설비를 갖추라”는 권고와 함께 ‘보류(refer)‘ 결정을 내렸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7월 21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논의된다. 위원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표결로 등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론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게 관례다. 이에 따라 입장차가 첨예한 한일이 합의된 문안을 가져오면 위원국이 결의하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당국자가 “가정적이지만 끝까지 컨센서스를 막고 투표로 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일본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조치를 충실히 취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한일 합의를 이루려는 게 양국 정부가 원하는 목표”라고도 했다.

이코모스는 보류 권고에서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아울러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 전략을 책정하고 관련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며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등재 추진 때부터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조선인 강제노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 “日, 약속 안 지킨 전례”… 日 “韓과 정중히 논의”
이코모스의 권고 배경에는 일본이 2015년 ‘군함도’로 알려진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하시마(端島) 탄광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대상 시대를 메이지 시대로 한정했다. 한국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포함한 전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일본은 결정문에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는 각주(footnote)를 달고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유네스코는 지난해 9월 “전체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을 상대로 추가로 권고한 상태다.

이코모스가 보류 결정을 했다고 해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작업이 좌초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코모스가 지난해 ‘보류’로 권고했던 8건 중 8건이 모두 등재결정됐고, 반려 권고했던 9건 중 6건도 등재결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사국들이 등재에 대해서는 후한 결정을 내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7일 “한국 정부와 성실하고 부단하게 정중히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코모스 권고에 대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 등재를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등재를 위한 몇 가지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등재 권고를 기대했는데, 왜 되지 않은 건지 궁금하다”는 지역민들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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