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는 초고가 1주택자와 가액 총합이 매우 높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물리는 ‘사실상 폐지’ 방침을 밝혔다. 최고 세율을 30% 내외로 낮추고 공제 한도를 대폭 상향하는 상속세 개편 방향도 내놓았다. 야당이 종부세 완화를 꺼내 든 뒤 대통령정책실장이 세제 개편 논의의 판을 키우면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줄다리기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16일 종부세에 대해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하지만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하다”며 “초고가 1주택자들과 보유 주택의 가액 총합이 아주 고액인 경우 세금을 내게 하고, 일반적인 주택이나 다주택자라 하더라도 보유 주택의 가액 총합이 아주 높지 않은 경우 종부세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장 전면 폐지에 따른 세수 문제를 감안해 ‘사실상 전면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성 실장은 상속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대주주 할증을 제외하더라도 최고 세율이 50%로 되어 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1% 내외로 추산된다”며 “최대한 30% 내외까지 일단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추가 알림을 통해 “종부세 사실상 폐지,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는 여러 가지 검토 대안 중 하나”라며 “구체적인 개편 방안은 세수 효과, 적정 세 부담 수준,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7월 이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은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세론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세수 결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상속세를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유산취득세’와 ‘자본이득세’로 전환해 나갈 구상도 내놓았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우리 상속세 체계가 가업 승계와 관련된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대주주 할증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려 할 때 세금을 내고 나면 기업 경영권이나 기업 자체를 물려줄 수 있는지가 불확실해진다”고 지적했다.
성 실장은 또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와 같은 형태의 상속세보다는 유산취득세를 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 상속세는 일종의 다자녀에 대한 페널티가 있는 세금 형태”라고 지적했다. 현행 상속세는 유산세 형태로 상속가액 전체를 과세표준으로 삼아 세금을 매겨 고율 구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별 상속가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해 세 부담이 낮아질 수 있다.
이 같은 세제 개편 방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온 방향이다. 윤 대통령은 1월 민생토론회에서도 “재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기업들은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며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종부세의 경우 전면 폐지보다는 초고가 1주택자와 가액 총합이 매우 높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부과해 사실상 폐지 효과를 보겠다는 입장이다. 세수가 지방 예산으로 돌아가는 종부세를 전면 폐지할 경우 지방 재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낡은 과세 기준 때문에 서울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중산층까지 과도한 세금을 내고 있다는 목소리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산층 부담 완화라는 방향에는 더불어민주당도 공감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상속세 최고세율 조정은 중산층이 아니라 고액 자산가를 위한 감세안이라는 인식 때문에 야당과의 국회 논의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 상속-종부세, 중산층 부담 확 줄인다
16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현행 상속세의 과세표준 구간과 공제액 상향, 세율 인하 등을 포함하는 상속세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날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상속세) 명목 세율, 과세 체계, 공제 한도 등을 일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까지는 변화시켜서 상속세에 따른 과도한 경제적인 부담은 줄여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우선 상속세 공제액이나 과표 구간을 높이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공제액을 높이면 상속세 계산에서 제외되는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상속세 납부 대상자가 지금보다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표 구간을 상향할 경우 동일한 상속액에 대한 세율이 더 낮아져서 세금 규모 측면에서 부담이 줄 수 있다.
반면, 상속세 최고 세율을 3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은 중산층보다는 고액 자산가나 기업인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내의 상속세는 명목상 최고 세율이 50%에 이르고 기업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경우 주식 평가액의 20%를 할증해 60%의 최고 세율이 적용됐는데 이를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높은 최고세율이 가업 승계 등에 걸림돌이 되면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부세에 대해서는 고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소수의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으로 크게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한 다음 재산세로 통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주택분 종부세 납세 인원은 2010년만 해도 20만 명이었지만 2022년에는 120만 명에 다가설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이후 현 정부의 종부세 부담 완화로 지난해에는 40만 명 선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2018년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초고가 주택 보유자를 제외한 중산층의 경우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 민주, ‘중산층 세 부담 완화’에는 호응할 듯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 시점에 맞춰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제출한다면 상속세와 증여세 등 개별 세제 개편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현재 일부 세제가 부동산 가격이나 중산층 기준 등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일부 조정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은 상속세와 관련해선 “중산층 세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에는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상속세 감면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광현 원내부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마침내 상속세율 30% 인하까지, 초부자 상속세 감세에서 나올 것은 다 나왔다”며 “현 정부의 부자 감세는 머지않아 서민 증세, 미래세대 증세라는 냉정한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상속세 과세가액 일괄공제 기준을 끌어올리는 등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세제 완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종부세 개편과 관련해서도 중산층 세금 부담 완화 측면에서 신중하게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완화’ 등을 이슈로 던진 바 있지만 대통령실이 종부세 폐지 카드를 들고나오자 언급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 사이에서는 1가구 1주택 실소유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이 대통령실 주장에 호응할 경우 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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