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수상한 움직임을 예사로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큰 도발에 대한 예행 연습이 아닐까'라는 군사적 의심을 하고 모든 정찰자산을 동원해서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북한과 안보 전문가인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6·25 전쟁 발발 74주년을 1주일 앞둔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동아닷컴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항상 자신들이 움직였을 때 남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든 상황을 체크하고 약점을 찾아내 더 큰 도발을 하곤 했다”며 안보 당국의 빈틈 없는 대비를 주문했다.
“큰 도발 예행연습 아닌지 우려…모든 정보역량 집중해야”
실제로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올해 4월부터 DMZ(비무장지대) 여러 곳에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했다. GP 재설치, 지뢰매설, 전술도로 보강, 대전차 방벽(추정) 구조물 설치 등 이례적인 행보가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오물풍선 살포와 GPS 교란 등의 도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뭐든지 계획하에 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 접근했을 때 남측 반응이 어떨까? 남측 공무는 어떻고, 전방포는 어떻고, 육해공군은 어떻게 움직일까?’ 최근 움직임은 이걸 체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결과를 갖고 큰 도발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는 1, 2차 연평해전 당시를 예로 들었다.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에서 경비정 1척이 침몰되는 수모를 겪은 북한군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2002년 6월 29일 2차 연평해전에서 1차 연평해전 때 자신들의 경비정을 침몰시켰던 바로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침몰시키는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온 국민이 한일월드컵으로 들떠 있던 2002년 6월 28일 자신들의 경비정을 연평도 서쪽 해상 NLL(북방한계선)에 침범시켜 기동 연습을 벌인 뒤 다음날 같은 경로로 기습 도발을 감행했다.
“러시아 간단하게 봐선 안돼…말라가는 북한에 영양주사 공급”
백 회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이후 24년만인 19일 전격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도 우리 안보 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푸틴이 6·25 발발일을 1주일 앞두고 방북을 전격 발표 했는데, 이는 북한에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너희를 지켜줄게’ 하는 시그널을 줄 수 있고 북한은 이에 힘입어 더 큰 도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지원은 말라 죽게 생긴 북한의 내구력을 강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제재로 내부 공급 기능이 마비되어 말라가고 상황에서 기름과 돈을 대주고 외교적인 돌파구를 열어주고, 루블 화폐 체제로 바꿔 달러 제재망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해준다니 북한에게는 환영일 수밖에 없지만 한반도 미래에는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푸틴의 입장에서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에게 이익이라는 게 백 회장의 분석이다. 게다가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에 갈수록 필요해지는 재래식 무기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방북을 앞둔 지난 5일 “우리는 한러 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우리 쪽에서는 채널이 열려 있고 협력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아 고맙다”고 말한 것은 소련 시절 스탈린 서기장 때부터 사용해 온 전형적인 양면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라는 나라는 간단치 않은 나라다. 과거 나폴레옹의 유럽 석권 야심을 깬 게 바로 러시아”라며 경계를 주문했다.
그는 “최근 독일 합참의장을 만났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첫마디가 ‘러시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거였다. 우리가 좀 잘 사니 러시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를 간단히 평가하면 안 된다. 러시아는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9·19합의 깬 것은 2019년 북한…우리가 파기한 것 아니다”
백 회장은 북한의 도발 움직임과 푸틴의 방북이 6·25 발발일에 즈음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시점은 결코 우연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표적인 예로 과거 11월 23일에 반복된 북한 도발 사례를 지목했다.
“11월 23일은 6·25전쟁의 정전을 앞두고 양측의 군사 분계선을 북위 38도선이 아니라 정전 현재 쌍방이 장악한 지역으로 정한 날입니다. 그 이후 서로 한 평의 땅이라도 더 얻으려고 싸우다 엄청난 희생이 있었죠. 그 이후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고 2019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창린도 포사격’ 도발이 있었습니다.”
그는 2019년 ‘창린도 포사격’ 도발로 북한은 이미 2018년 문재인 정권과 맺은 9·19군사합의를 깬 것인데, 일부 언론이 이를 언급하지 않고 최근 정부의 9·19군사합의 파기 선언을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린도라는 곳은 원래 포격을 하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포사격 지시를 함으로써 남북 군사합의서는 찢어진 겁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합의를 안 지키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죠. 9·19군사합의서는 당시에 이미 효력이 없어져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겁니다.”
“발상의 전환”으로 현충일 전쟁기념관 역대 최다 관람객
올해 4월로 취임 2년 째를 맞은 백 회장은 현충일인 지난 6일 전쟁기념관 개관(1994년) 이래 최다 관람객(3만6814명)을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백 회장은 “현충일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 친화적인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준비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은 6일 순국선열의 희생을 되새길 수 있는 그림대회를 열었다. 전국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2000여 명이 참가했다. 태극기 판박이, 태극기 키링·그립톡 만들기, 전통무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부스도 마련했다. 1군단의 태권도 시범과 해병대 군악·의장 행사도 보여줬다. 백 회장은 “현충일 날 사이렌 듣고 정숙한 분위기에 묵념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를 열면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원서를 내는 순간부터 계속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봤다”고 설명했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과 국방부 차관, 제20대 국회의원 등을 지낸 그는 북한과 안보상황을 만화와 쉬운 글로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을 계속 해왔다.
전쟁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면서는 해외 인사들을 상대로 한반도 안보 공공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을 찾는 세계 각국의 정치 안보 관련 인사들에게 한반도 안보상황과 평화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 합참 의장, 나토 사령관, 뉴질랜드 총통, 룩셈부르크 총리, 앙골라 경제부 장관이 그를 방문했다.
그는 또 전문 석학들이 모여 전쟁의 교훈과 안보정책 방향을 토론하는 ‘나지포럼(나라를 지키는 포럼), 유명 인사들을 초빙해 청중들을 상대로 안보관련 경험담을 공유하는 ‘용산 특강’등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백 회장은 “북한은 똘똘 뭉쳐 있는데 우리는 내부적으로 안보와 관련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관심을 유발시키고 한 목소리를 모아 나가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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