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4주년인 25일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보 문제에 민감한 보수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나경원 의원은 이날 오전 가장 먼저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나 의원은 보수 성향 단체 ‘새로운미래준비위원회’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는 경우 미국의 (대북)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다”면서 자체 핵무장론을 밝혔다. ‘보수 정통성’을 내세운 나 의원이 핵무장론을 이슈로 던져 보수층을 껴안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핵전력을 활용한 안보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제 정세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필요하면 핵무장의 잠재적 역량을 갖추는 데까지는 가자”고 말했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은 “지금 단계에서 바로 핵무장으로 가면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국민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속도조절론을 내세웠다.
윤상현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북핵을 용인하는 식으로 가면 우리도 제한적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윤 의원은 “지금 당장 핵무장을 하자는 것은 국제 경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며 “한반도 영해 밖에 핵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상시 배치하고 한미 간 핵 공유 협정을 맺는 것이 사실상 핵무장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신중론을 펼쳤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북한-러시아 군사동맹 강화로 자체 핵무장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 심정에는 충분히 동의한다”면서도 “지금은 핵무장에 앞서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 확보를 통해 대북 핵 억제력을 강화할 때”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성과 중 하나인 워싱턴 선언을 언급하면서 ‘친윤’(친윤석열) 후보임을 부각한 셈이다.
나 의원은 이날 오후 한 전 위원장과 원 전 장관을 겨냥해 “‘안이하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나약한 사고방식을 깨야 한다”며 “미국 정치권에서도 한국 핵무장론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핵무장론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테러 등 연이은 도발과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등으로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와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조야(朝野)는 물론이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국의 핵무장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어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보수층 결집을 위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24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행동이 역내 국가들이 자국의 모든 군사 및 기타 조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이 커지고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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