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싸움에… 방통위 13개월간 7명째 수장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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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野 탄핵안 보고前 자진사퇴
7개월만에 또 비정상 1인 체제로
후임 이진숙 前대전MBC 사장 유력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본인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에 자진 사퇴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면직안을 즉각 재가했다. 과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본인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에 자진 사퇴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면직안을 즉각 재가했다. 과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 김 위원장 사의를 수용하고 면직안을 재가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후 13개월간 7명째 방통위 수장 교체다. 민주당 주도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방통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7개월 만에 방통위가 정족수(2인 이상)를 채우지 못하는 비정상적 1인 체제가 된 것.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다음 날 김 위원장 주도로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등 공영방송 3사의 임원 선임 계획을 의결로 맞대응한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탄핵소추-사퇴’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작금의 사태로 인해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통신 미디어 정책이 장기간 멈춰 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의 ‘2인 체제 운영’이 직권남용이라는 점을 내세운 야당의 김 위원장 탄핵소추가 야당 주도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중단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임 위원장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방송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고,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사퇴하자 다른 6개 야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방송 장악 쿠데타를 기도한 김 위원장이 탄핵을 피하려 꼼수 사퇴했다”며 “방송 장악 쿠데타에 대해 반드시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무리한, 근거 없는 탄핵 발의안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방통위 파행 부른 ‘방문진 이사’ 갈등… “친여로 교체” “친야 사수”


여권 “野, MBC 사장 사수 무리수”
정부, 내달 방문진 이사 교체 계획
野 “김홍일 꼼수사퇴 의도 드러나
방송장악 국정조사 추진할 것”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이래 잦은 수장 교체로 비정상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8, 9월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라는 정부 여당의 로드맵도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방통위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여야는 비정상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탄핵 남발로 국정 공백이 계속된다”고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주요 현안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의결돼 위법이 누적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본질은 MBC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서로 입맛에 맞게 각각 친여 성향으로 교체하거나 친야 성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셈법”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송 환경을 조성하려고 팽팽히 맞선다는 의미다.

● 방문진 이사 “친여로 교체” vs “친야 유지”

방통위의 가장 큰 현안은 다음 달과 9월로 예정된 MBC 대주주인 방문진과 KBS, EBS 이사진 구성이다. 야당이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를 발의한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당시 김 위원장은 방문진, KBS, EBS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여권은 “야당이 식물 방통위를 만들어 MBC 이사진 구성 변경 시기를 늦추기 위해 김 위원장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2일 퇴임사에서 “야당의 탄핵 소추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구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저에 대한 직무 정지를 통하여 방통위 운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퇴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을 예정대로 이끌어 가는 데 걸림돌을 없애려는 의도”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현행 방문진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그 시기에 맞춰 인적 구성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통화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장을 새로 임명하는 것은 방송 장악이 아니라 정당한 순리”라며 “(MBC가) 민주당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기존 방문진 이사 임기를 이어가려는 것이야말로 방송 장악이자 더 큰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野 MBC 사수 지나쳐” vs “방송 장악 국조”

다음 달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방문진 이사진은 의결된 계획안에 따라 14일간 공모해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임명된다. ‘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지는 방통위 규정상 이상인 부위원장 혼자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후임 위원장을 즉각 임명해 의사정족수(2인 이상)를 채운 뒤 다음 달 내로 방문진 이사 교체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의 MBC 사수는 도가 지나쳤다”며 “2인 체제가 문제라면 왜 서둘러 다른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기습 사퇴”라며 “방문진 이사를 친여 성향으로 꾸리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20여 일 걸리는 국회 청문 절차 등을 거치면 7월 말쯤엔 새 방통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통위가 강행한 계획안에 따라 방문진 이사를 ‘정부 입맛’에 맞는 인선으로 꾸리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은 후임 위원장만 추가된 2인 방통위나 이 부위원장의 ‘1인 방통위’에서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김 위원장의 사퇴로 탄핵 추진이 무산되자 이를 대신해 야 6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최민석 대변인은 2일 “‘런동관’(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런종섭’(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이은 ‘런홍일’”이라며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탄핵 소추안이 송달된 대상자는 사퇴할 수 없도록 하는 ‘김홍일 방지법’(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방송통신위원장#국회 본회의#탄핵 소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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