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전당대회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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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후보의 출마 선언 현장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비전을 들고나올지 몹시 궁금했는데 참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필 그 시간 ‘수사 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검찰개혁 TF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민형배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구절절한 ‘불참의 변’을 올렸습니다. 전날 열린 이재명 당 대표 후보의 연임 도전 발표 자리에 못 간 이유를 직접 해명한 거죠. 민 의원은 “오후에 이재명 후보의 출마선언문을 꼼꼼히 읽어봤다”며 “마치 대선후보 출마 선언문 같았다는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기대가 크다”고도 덧붙였습니다.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고 김문기·백현동 허위 발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26차 공판에 출석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 당 대표 후보가 마중 나온 민형배 최고위원 후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고 김문기·백현동 허위 발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26차 공판에 출석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 당 대표 후보가 마중 나온 민형배 최고위원 후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 뒤로 왼쪽부터 한준호, 강선우, 김민석, 전현희, 김지호 최고위원 후보가 서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 뒤로 왼쪽부터 한준호, 강선우, 김민석, 전현희, 김지호 최고위원 후보가 서 있다. 뉴스1
민 의원이 이런 해명 글까지 올린 건 전날 이 후보가 당 대표 연임 도전을 선언하는 자리에 현역 의원인 강선우 김민석 전현희 한준호 후보를 비롯해 김지호 부대변인 등 총 다섯 명의 최고위원 후보들이 참석한 점을 의식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 최고위원 후보는 출마를 선언하는 이 후보 뒤에 나란히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서 있더군요. 그러고는 이 후보의 출마 선언이 끝나기 무섭게 제각각 페이스북에 이 후보와 함께 찍힌 자신들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올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여는 최고위원이 되겠습니다. (중략) 이재명 대표의 곁이 아니라, 뒤를 지키겠습니다.” (강선우 의원)
강선우 의원 페이스북 캡처
강선우 의원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후보의) 출마 선언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중략) 이재명 대표와 함께 국민께 희망을 드릴 철저한 집권 준비,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김민석 의원)
김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후보의 담대한 결단에 함께 하겠습니다. (중략)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전과 미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이재명 대표님의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전현희 의원)
전현희 의원 페이스북 캡처
전현희 의원 페이스북 캡처

“저는 이재명과 함께합니다. (중략) 오늘의 출마 선언에서 저는 그 희망을 보았습니다.”(한준호 의원)

이처럼 각각 자기 위주로 잘 나온 사진과 함께, 읽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명비어천가’를 곁들였더군요. 저만 해도 이걸 보면서 “그럼 오늘 안 온 사람들은 왜 안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강성 지지층은 오죽했겠습니까. 민 후보 등도 그런 질타에 대비해 불참의 변이라도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총체적 ‘노답’ 수준인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다소 묻혔을 뿐, 민주당 전당대회도 정말 가관입니다.

당의 최고위원은 당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어가는 지도부의 핵심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나라와 당을 위해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없고, 죄다 이재명을 돕고 지키겠다는 공약들뿐입니다. 대놓고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 아니라 ‘당대명(당연히 대표는 이재명)’”(강선우 의원), “이재명을 지킬 수석 변호인이 되겠다”(전현희 의원)라고 할 정도이니 말 다 했죠.

이들이 출마선언문에 언급한 ‘이재명’만 세어 보니 도합 105번이더군요. ‘이재명 팔이’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 같은 지적에도 “(이재명 칭송은) 자연스러운 현상”(김민석 의원)이라며 도리어 당당합니다. 이재명 후보도 14일 최고위원 예비경선 현장에서 “친국민·친민주당을 그렇게 (친명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감쌌더군요. ‘친명’ 최고위원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자신이 아닌 국민과 민주당을 위한 것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어대명’ (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기류를 한껏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아예 이번 전당대회를 자신의 차기 대선 연습용으로 삼은 듯하죠. 그는 연임 출사표에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 대신 국가 위기 극복과 경제 성장을 통한 민생 회복 의지를 잔뜩 담았습니다. 기존 ‘싸움닭’보다 ‘차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굳이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고 내년 1월 시행될 금융투자소득세의 유예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외연을 확장하고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수로 읽힙니다.

“종부세는 상당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한편,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 검토를 해야 한다. 제도가 가져온 갈등과 마찰이 있다면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투세(유예)도 함부로 결정하진 쉽진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시기 문제에 있어선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다른 나라 주가지수는 올라가고 있는데 대한민국 주식시장만 역주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주식시장에 투자하시는 국민께서 억장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9~10년 전부터 국회의원이 돼서 중단하기까지 소형 잡주를 사서 깡통을 찬 적도 많고 대형 우량 투자해서 꽤 복구도 하고 나름 이익도 얻었다. 지금처럼 주식시장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고 대한민국 경제 미래가 어두워서야 주식투자 할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1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최고위원 예비경선 대회에 뒤늦게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1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최고위원 예비경선 대회에 뒤늦게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은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감세 기조에 대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죠. 특히 종부세 폐지는 민주당 강령 속 ‘조세 형평성 확립’ 조항과도 배치됩니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이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다”고 반발한 배경입니다.

그런데도 이 후보가 이런 논란성 발언을 꺼내든 건, 당의 공식 입장과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합리적 차기 대선주자’ 이미지를 만들어보려는 계산이 반영된 걸 겁니다. 나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이렇게 열려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거겠죠. 얼마 전 당이 ‘당론’이라며 찬성을 요구한 이재명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수사 검사 탄핵안에 반대도 아니고 기권했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다가 결국 쫓겨나듯 원내부대표직을 내려놓은 곽상언 의원이 보면 억울하겠습니다.

이처럼 이 후보가 차기 ‘PI(President Identity)’ 만들기에 주력하는 사이 당이 대신 총대를 메고 대여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19일과 26일 두 차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 관련 청문회를 열고 김건희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를 증인으로 불러 앉히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23일 치러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전후로는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과 ‘한동훈 특검법’도 몰아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여권의 치부를 거듭 건드려 이재명 후보의 사법리스크를 상쇄시키겠다는 목표겠죠.

민주당은 앞서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 대표의 1년 전 사퇴 시한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당헌을 무리하게 개정했다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원래 당헌대로라면 이 후보는 당 대표가 된 뒤 대선에 출마하려면 대선 1년 전인 2026년 5월 사퇴해야 합니다. 다만 당헌이 저렇게 바뀌면서 이번에 당 대표로 당선될 경우 2026년 6월 전국 지방선거까지 공천권을 행사한 뒤, 차기 대선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질 시점에 물러날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재명 맞춤형 개정’이죠.

정말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전당대회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재명 후보는 참 좋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재명#더불어민주당#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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