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60일 만에 발의된 법안 등 의안 개수다. 5월 30일 임기 시작 직후부터 여야 간 극한 대결 속 각종 특검법안과 탄핵안 등이 발의된 데다, 21대 국회에서 여야 갈등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던 법안들이 그대로 재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역대 ‘최다 발의, 최다 폐기’ 오명을 썼던 21대 국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다 발의·폐기 21대 국회 전철 밟나”
29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까지 발의된 법안 등 의안은 총 2376개였다. 의원 1명당 일주일에 의안 1개씩 발의한 꼴로, 같은 기간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2500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19대(931개), 20대(1301개) 국회 때와 비교하면 2배 가량 폭증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여야 갈등이 21대 국회 이후 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특히 21대 국회 임기 말에 쟁점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후 재표결 및 폐기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작 시급하게 처리돼야 할 민생·경제 법안들도 그대로 폐기된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21대 국회에선 4년 간 총 2만5858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중 64.9%인 1만6784개가 본회의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발의 건수도 역대 최대였지만, 폐기 및 철회 건수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
이에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법안들을 발의자만 변경하거나 일부 세부 내용만 수정해 재발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인공지능(AI) 관련 법안의 경우 13개 중 4개가 22대 국회에서도 사실상 그대로 재발의됐지만 한 달 넘게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여야 모두 특위 설치 등 AI 관련 법 필요성을 말로는 강조하고 있지만 정쟁 법안들에 밀려 뒷전”이라며 “언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 4분의 3이 비용추계서도 첨부 안해
쏟아지는 법안들 중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도 태반이었다. 이날까지 발의된 의안 중 시행에 필요한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은 경우가 총 1801건으로 전체의 4분의 3 이상이었다.
‘K-칩스법’이라 불리는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100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지만, 발의 3주 뒤에야 비용추계서를 뒤늦게 첨부했다. 국세감면율 법정 한도를 규정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국가 재정과 관련된 법안도 법안 시행 후 예산이 얼마나 소요될 지에 대한 비용추계서를 내지 않았다. 비용 계산이 나오기도 전에 법안부터 일단 내고 보는 셈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가 정리도 못하면서 계속 물건을 추가로 들여 쌓아두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여야 합의로 안건 개수를 조정하거나 위원장 명의 대안으로 정리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방 청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의 건수보다도 정말 민생에 필요한 법안을 제대로 준비해 처리까지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방송4법’ 중 세 번째 법안인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지난 28일 법안 상정 직후 시작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약 31시간만에 강제 종결하고 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 187명 전 원 찬성으로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방문진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네 번째 법인 교육방송공사법(EBS법)을 상정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8시 32분경 시작된 EBS법 필리버스터도 30일 오전 강제 종료시킨 직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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