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두 차례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을 8일 재발의했 두 번째 특검법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된 지 2주 만이다.
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하고, 민주당 의원 169명 전원이 이름을 올린 세 번째 특검법은 특검 수사대상에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먼트 대표 등이 김건희 여사 등에게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을 부탁한 불법 로비 의혹’을 추가하는 등 이전보다 강화됐다. 채 상병 특검법에 김 여사의 이름이 적시된 건 처음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안했던 ‘제3자 특검 추천’ 방안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전과 같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각각 1명씩 특검을 추천하도록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더 강화된 채 상병 특검법을 먼저 발의해 한 대표를 압박하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셈법이다. 박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의 특검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한 대표도 자신이 생각하는 특검법안을 내놓길 바란다”며 “그래야 토론이든 협상이든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제3자 추천안’을 검토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여당에서 의견이 나오면 어차피 상임위에서 특검법을 서로 통합해 심리해야 한다”며 “(민주당 내에서도) 3자 추천안이 좋을 수 있다는 의견도 마침 나오고 있기 때문에 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더 세진 채상병 특검법… 金여사 두 번 적시, 한동훈 제안 ‘제3자 추천안’ 미반영
“더불어민주당의 특검법이 마음에 안 들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자신이 생각하는 특검법을 내놓길 바란다.”(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더 강하고 더 센 특검법이 아니라 더 허접한 특검법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최고위원)
민주당이 8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수사대상에 적시하는 등 더 강화된 내용의 세 번째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 것은 앞서 ‘대법원장 등 제3자 특검 추천안’을 제시했던 한 대표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제3자 특검 추천안을 둘러싼 여권 내 친윤(친윤석열)과 친한(친한동훈)계 간 갈등을 키우겠다는 것. 한 대표가 끝내 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당 대표가 자신의 발언을 지키지 못했다’고 정치적 타격을 입히겠다는 셈법도 있다. 민주당은 18일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후보가 연임에 성공한 뒤인 8월 말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 세 번째 특검법에 김건희 여사 두 번 적시
박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하고 민주당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이름을 올린 세 번째 채 상병 특검법에는 김 여사의 이름이 두 차례 나왔다. 이들은 법안 제안 이유에 “채 해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이 김건희 등에게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을 부탁한 불법 로비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밝힌 뒤 수사 대상에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추가했다. 앞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두 개의 특검법엔 김 여사가 명시되지 않았다.
민주당 김용민 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특검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면서 “김 여사가 ‘임종호-임성근’의 구명 로비에 직접 연관이 있다면 비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을 좌지우지한 국정농단”이라며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의 수사대상은 이전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정 등을 포괄했다. 윤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특검 추천권도 이전 특검법과 같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각각 1명씩 갖도록 했다. 제3차 추천안은 포함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특검법을 발의하면서도 한 대표를 거듭 압박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실과 여당 간 갈라치기를 하겠다는 취지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 대표가 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민주당 법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예 특검을 안 하겠다는 말이고 이것은 한 대표가 전당대회 때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자백과 같다”고 말했다.
다만 당 내에서도 한 대표가 실제 제3자 특검 추천안을 낼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 의원은 “이제 갓 당 대표가 된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 여당 당원 다수가 반대하는 제3자 특검 추천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못 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며 “한 대표가 자신의 말을 어겨 정치인으로서 궁색해지면 그것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與 “기존보다 더 독소 조항”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세 번째 발의한 특검법은 수사 대상과 증거 수집 기간 등을 확대 명시하는 등 기존보다 더 독소조항으로 차 있다”며 반발했다. 친한계 핵심인 장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벌써 이 특검법만 세 번째 반복하고 있는 것인데 민주당이 왜 이토록 이 특검법에 목매달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특검법에 임성근 로비 의혹이 수사대상에 포함된 만큼 한 대표가 당장 특검법 발의를 추진하긴 어렵다는 기류다. 친한계 의원은 “야당이 정쟁을 목적으로 법안을 발의했는데 대통령실의 수사외압 의혹 부분만 따로 떼서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을 발의하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했다. 지도부 관계자도 “세 번째 특검법에는 우리 당에서 ‘사기탄핵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이 들어있는데, 타협은커녕 어깃장을 놓는 수준”이라고 했다.
다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결과에 대한 여론의 평가 등에 따라 한 대표가 특검법을 추진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다른 지도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의혹 해소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도망칠 필요 없다는 것이 대표의 의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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