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역본부 차장 A 씨는 2021년 3월 ‘구찌 가방’을 구입할 때 230만 원 어치 백화점 상품권을 썼다. 집 근처 대형 마트와 부친의 시골 집 근처 마트에서도 300만 원에 가까운 상품권을 사용했다. 이렇게 A 씨가 사용한 상품권 중 최소 80만 원가량은 최초 구매자가 직무 관련 업체 2곳이었다. 그중 한 곳은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로, A 씨가 관리감독하던 곳인 동시에 LH 퇴직자들인 ‘전관(前官)’들이 다니는 업체였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 LH 직원, 전관(前官)들과 골프여행
감사원은 8일 ‘LH 전관 특혜 실태’ 감사결과 보고서에서 LH 직원들이 ‘전관(前官)’ 이라 불리는 퇴직자를 고리로 업체와 부정한 유착 관계를 맺어온 실태를 공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직무 관련 업체에 다니는 LH 퇴직자들과 함께 베트남 다낭과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오가는 등 ‘골프 여행’도 다녔다. 골프장 이용비, 식대 등은 A 씨가 대부분 현금으로 지불했다. 다만 A 씨는 같은 시기 집과 회사 근처 현금 자동입출금기기(ATM)에서 10차례 걸쳐 총 4560여 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했다. A 씨는 “아버지가 보훈수당과 기초연금을 명절에 내게 주셨는데, 이걸 보관하고 있다가 입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원은 A 씨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산을 등록하면서 이 현금을 신고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업체로부터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A 씨는 감사 하루 전날 휴대전화를 바꿨고, 업체 측 관계자 등과 주고받은 메시지 기록 등이 없는 ‘깡통 폰’만 감사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A 씨에 대해 업체로부터 상품권 등을 받은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한편, LH 측에는 파면하라고 통보했다.
LH의 현장감독 직원인 B 씨 등 3명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사 현장에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 재취업한 퇴직자와 골프를 치러 다녔다. 이들은 3년 동안 각자 30회 가까이 골프장을 다니며 많게는 99만 원에 달하는 식사 및 골프장 할인 혜택 등을 받았다. 감사원은 B 씨 등 3명에 대해선 LH에 정직 처분을 통보했다. 감사원은 또 직무 관련 업체로부터 퇴직 직전 290여 만 원의 현금을 받은 LH 전 직원 C 씨에 대해서도 청탁금지법위반 혐의로 수사를 요청했다.
● 벌점 피하는 ‘LH 전관 프리패스’
감사원에 따르면 LH 충북지역본부는 2021년부터 청주 지역 공공임대주택 조성공사를 하면서 ‘설계 오류’로 설계변경 신청을 한 업체 4곳에 대해 벌점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벌점을 면제받은 업체 4곳엔 LH 퇴직자들이 8~12명씩 다니고 있었다. LH는 20명의 LH 퇴직자가 재직 중인 한 업체에는 발급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 ‘품질우수통지서’까지 발급해줬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LH가 발주한 전체 감리 용역의 90.6%, 설계 용역의 69.2%를 퇴직자가 다니는 ‘전관 업체’가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LH가 ‘무량판 구조’로 설계한 전국 공공주택 사업지구 5곳 중 1곳은 철근이 제대로 설치돼있지 않아 무너질 위험이 있는 사실도 이번 감사 결과 나타났다. LH가 건설한 전국 102개 공공주택 사업지구 중 23개 지구(22.5%)가 ‘순살 아파트’로 불린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같은 부실 시공 아파트일 수 있다는 것. 무량판 구조란 수평 구조 건설자재인 ‘보’를 없애고 슬래브와 기둥, 철근만으로 건물 무게를 지지하는 공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