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야당 의원과 보좌진, 언론인 등의 통신정보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알려져 ‘통신사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통신이용자정보(통신정보) 조회가 가능하게 하는 법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묻지 마 사찰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9일 밝혔다. 개정안은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통신정보도 ‘통신사실확인자료’처럼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가입자가 전화를 걸고 받은 내역 등을 포함한다. 아울러 수사기관이 통신정보를 수집한 뒤 당사자에게 통보를 유예할 때도 법원의 허가를 사전에 받도록 했다. 통보 유예가 가능한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시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의힘도 해당 법안을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해 보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토를 할 것”이라며 “법원 영장이 필요한 부분인지에 대해 여야가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야당 의원과 보좌진, 언론인 등의 통신이용자정보를 무더기 조회한 것을 ‘통신사찰’로 규정하며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에 황정아 의원뿐만 아니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과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박균택 의원도 각각 법원 영장을 받아야만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준비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야당이 본격적인 법안 발의에 나서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추경호 당시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의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했던 경우를 언급하며 “제도 개선 논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 野 관련 발의 이어질 듯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로부터 ‘누구와 언제 통화했는지’(통신사실 확인자료)를 확인하려면 지금도 ‘통신영장’으로 불리는 법원의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통신이용자정보도 이 같은 절차를 거치게 하자는 게 황 의원 개정안의 골자다.
김승원 의원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순 허가서가 아닌 공식 영장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압수수색 등을 할 때처럼 법원이 ‘명령서’를 발부해야만 통신정보 수집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당 지도부는 여당에서도 제도 보완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는 만큼 단기간에 합의 처리를 시도해 보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통화에서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법안인 만큼 합의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론 채택 여부도 고심 중인 분위기다. 당 관계자는 “당론으로 밀어붙일 경우 자칫 정쟁 구도가 돼 오히려 국민의힘에서 받기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박균택 의원은 통화에서 “검찰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할 게 뻔한 법안인데 여당에서 합의 처리해주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여당 의원들도 잠재적 피해자인 만큼 개별 의원의 판단에 맡기는 쪽으로 노선을 정하면 오히려 쉽게 처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 與 “검찰 힘 빼기 이용” 우려 속내도
야당의 입법 속도전에 여당 내에서도 “논의는 해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장동혁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그동안 예외로 인정됐던 부분을 포함하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니, 정부와 수사기관의 입장을 들어보고 논의하는 토론회나 공청회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도 “통신조회든 뭐든 사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통신기록 추적은 엄격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영장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여당 지도부 차원에선 “자칫 야당의 ‘검찰 힘 빼기’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 재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왜 이제 하는 것이겠나.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 수사를 해 온 검찰의 힘을 빼 보려는 게 아니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검찰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헌재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통신이용자정보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임의수사”라며 “수사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만큼 법원의 영장 발부를 기다리다 보면 수사기관의 책무에 중대한 지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최근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사실을 통지받은 민간인 사례를 제보받기 위한 ‘통신사찰 피해 접수센터’를 이날부터 23일까지 보름간 운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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