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 회담 다음 날인 2일 열린 22대 국회 개원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불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한 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계엄설이 난무하고 특검·탄핵을 남발하는 국회의 정상화가 먼저”라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상화해야 할 것은 윤 대통령”이라고 맞섰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야당 탓이 크지만 윤 대통령이 국회와의 협치 의지를 선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개원식에 참석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여야 대표는 전날 회담에 대해 “정치를 복원하고 민생 중심으로 정치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상당히 진전된 대화를 하고 공감을 이뤘다”(민주당 이재명 대표)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정치 복원 첫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전날 이 대표에 이어 9월 정기국회 첫날인 이날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꺼내든 이른바 계엄령 준비 의혹 제기를 두고 여야 대표 회담 하루 만에 대통령실·여당과 야당이 정면충돌하면서 “어렵게 잡은 협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날 개원식은 여야 간 극한 대립 끝에 22대 국회 임기 시작 96일 만에 열렸다. 최장 지각 개원이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 이유에 대해 “야당이 22대 국회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일방 독주에 입법 독재까지 한 상태에서 개원을 축하할 만한 국회인가. 민주화 이후 최악의 국회”라고 날 선 반응을 내놨다. 반면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여야 갈등이 아무리 심할 때도 대통령은 개원식에 참여해 왔다”며 “어떤 핑계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는 헌정사의 불명예를 가릴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지금 이 정권 어딘가에서 계엄을 기획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인 김 후보자 지명은 계엄을 준비하기 위한 용도”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정혜전 대변인 브리핑에서 이 대표를 겨냥해 “날조된 유언비어를 대한민국 공당의 대표가 생중계로 유포한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라면 당 대표직을 걸고 말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대표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란 정도의 거짓말이라면 이건 국기문란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날 오전 여야 대표들은 전날 회담을 거론하며 대화는 지속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어갔다. 한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투쟁의 정치와 별도로 분리해 국민만 생각하고 신속하게 답을 낼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여야 간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22대 국회 최장 ‘지각 개원식’… 尹 불참,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여러 가지 쟁점 중에서 공감대가 이뤄진 부분이 많이 있어서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치는 계속된다는 걸 보여드리겠다.”(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실제적 합의가 이뤄졌다. 앞으로 국회 입법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전날(1일) 여야 대표 회담을 진행한 양당 대표는 2일 각 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야 협치, 정치 복원에 물꼬를 튼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후속 조치를 이어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민주당의 계엄령 의혹 공세에 대통령실과 여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정면충돌하면서 오히려 정쟁이 가열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데 대해 대통령실은 “대통령 가족에게 살인자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인 데다 계엄설이 난무하고 대통령을 향해 (야당의) 언어 폭력과 피켓 시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원식에 참석하는 것이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거부왕 대통령의 국민 거부”라고 맹비판했고, 여당은 “민주당 탓”이라면서도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럴 때 오히려 개원식에 참석해 협치 의지를 먼저 내보였으면 국민들이 공감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
● 용산 “尹 개원식 불참, 野가 자초”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국회 개원 연설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가 지난달 15일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국장급 간부 사망 사건을 두고 “김건희 윤석열이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라고 발언한 때부터 불참 방향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개원식 참석을 건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살인자 망언에 사과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연찬회(지난달 29일) 무렵 불참의 뜻을 굳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첫 불참’이라는 표현에 매일 필요가 없다”며 “야당이야말로 검사 탄핵에 방통위원장이 임명되자마자 탄핵을 추진한 것이 최초다. 대통령이 그런 국회에 안 가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전날 말로 두들겨 패놓고 다음 날 ‘결혼식에 와서 축사해 달라, 개업식에 와서 축하해 달라는 게 일반 국민에게도 상식적이지 않은 행태”라는 날 선 반응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31일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을 당시 본회의장에선 피켓 시위가 있었다. 또 관례로 국회의원들은 기립해 대통령을 맞이하지만 지난해 시정연설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악수를 청한 윤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는 방식으로 외면하거나 앉은 채로 대통령과 악수했다.
● 與 내부 “대통령이 포용 모습 보였어야”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 이유로 “국회 정상화”를 꼽은 데 대해서는 “대통령실은 국회 상황을 핑계 대는데 멈춰 선 것은 국회가 아니라 국정”이라고 반발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심과 담을 쌓은 권력의 말로가 온전할 리 없다”고 날을 세웠다.
반면 국민의힘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자신들의 망언은 사과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을 꼬투리 잡고, 또다시 국회를 정쟁의 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 여당 의원은 “협치 물꼬는 원래 대통령이 먼저 터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사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은 물론 잘못됐고, 국민들도 그걸 알지만 대통령이 조금 더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9월 정기국회도 난항이 예상된다. 가장 큰 난관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방송4법과 노란봉투법,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등에 대한 국회 본회의 재표결이다. 민주당은 이 법들을 9월 정기국회 핵심 입법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이 세 번째 발의를 예고한 채 상병 특검법도 대통령실·여당과 야당이 대치하는 쟁점 사안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