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日총련에 “통일 활동-韓인사 접촉 전면중단”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4일 03시 00분




친북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일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 인사와의 관계도 완전히 차단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총련은 북한 당국의 지시를 13개 활동 방침으로 정리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동포 교육기관인 조선학교 등 하부 조직에 이른바 ‘13항목 지시서’로 전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의 교전국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남 적개심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치란 분석이 나온다. 총련계 동포 일부는 갑작스러운 통일 관련 활동 금지 등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일동포 소식통에 따르면 총련은 13항목 지시서에서 각급 기관 및 단체들에 평화통일, 남북한 한민족 등의 내용이 직간접적으로 담긴 활동을 일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한국의 민주적 인사, 민족 교육을 지지하며 조선학교를 지원하려는 인사 및 단체와의 관계도 완전히 끊으라고 했다.

北, 친북단체 교류도 금지… 통일 강령 유지 총련 반발


총련에 전달 ‘13항목 지시서’ 보니
南을 동족으로 표현 못하게 하고… 통일 관련 수업은 완전히 금지
조국통일 강령으로 유지해온 총련… ‘70년 정체성’ 부정당해 반감

친북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북한 당국에서 지시를 받아 하부 조직에 전달한 이른바 ‘13항목 지시서’를 보면 한국을 향한 북한의 반감과 적개심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연관된 사실상의 모든 교류와 교육을 중단하고, 한민족과 통일 등의 의미를 담은 단어를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언급할 때도 남한을 동족으로 간주할 수 있는 문장과 표현은 인용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총련 집행부는 북한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하부 조직에 전달했지만, 총련계 동포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큰 것으로 전해졌다. 총련은 1955년 결성 이후 지금까지 조국 통일을 주요 강령으로 유지했는데, 북 당국의 지시로 7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 친북 인사도 접근 및 교류 금지

13항목 지시서는 각급 기관, 단체에 ‘동족, 동질 관계로서의 북남조선(남북한),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등으로 비치는 활동을 일절 금지할 것’을 지시했다. 또 ‘대한민국의 민주적인 인사, 민족 교육에 이해를 표시하고 우리 학교(총련계 조선학교)를 지원하려는 단체, 인사와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라고 밝혔다. 총련이나 북한에 호의적인 한국 인사 및 단체와의 교류도 중단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총련은 그동안 교류가 있었던 한국 인사, 단체들과도 사실상 교류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 1일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총련 주최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1년 추도식의 경우 남한 측 참석자 없이 총련 간부, 일본 측 인사, 재일동포 일부가 모여 치렀다.

지시문에는 또 과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중 남한을 동족으로 표현한 내용을 담은 문장 등은 인용하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학교, 사무실에 설치된 시설물 중 남한을 동족으로 표현한 단어, 구호, 미술 작품도 전부 교체해야 한다.

지시서는 ‘우리 당과 공화국(북한) 정부의 새로운 대남정책 노선 전환 방침을 정확히 틀어쥘 것’을 첫 번째로 내세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규정한 적대적 남북 관계를 총련의 기본 방침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 “북 지시로 우리 역사 못 가르쳐” 반발

13항목 지시서에 따라 총련계 재일동포 교육기관인 조선학교의 교육 방침도 대대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발행한 교과서는 일단 그대로 두되, 통일 관련 교육은 수업 시간에 일절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교사들에게는 남한을 같은 민족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했다. 국어, 현대사, 지리 등에서 수업 시간에 다루지 말아야 하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적시했다.

총련은 13항목 지시서 내용을 조선학교 등 하부 조직에 전달했다. 하지만 동포 개개인에게는 13개 항목을 직접 공개하진 않았다고 한다. 적잖은 내용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총련 집행부, 학교 등을 통해 지시서 내용을 알게 된 동포들은 반발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련 소식에 정통한 한 재일동포는 “그동안 북을 따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조선노동당의 세부 지침이 하달된 것은 본 적이 없다”며 “그동안 납치 사건, 귀국선(북송선) 사업 등에 대해 조국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 왔는데 이제는 통일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니 황당하다”고 반발했다.

조선학교에서 현대사 일부를 수업하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북한이 다루지 못하게 한 ‘현대조선력사’ 고2 제3편은 1950년대 중후반 남북의 통일 활동과 함께 재일동포 역사, 총련 결성 과정, 민족학교 설립 등 총련계 동포 초창기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3항목 지시서에는 ‘삼천리 금수강산’ ‘남녘 겨레’ ‘백두에서 한라까지’ 등의 노래 가사를 일절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조선학교 교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면 바꿔야 하고 한반도 지도 등이 새겨진 깃발, 교표 등은 사용이 금지됐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친북 재일동포#13항목 지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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