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장기화와 응급실 운영 차질을 놓고 대통령실과 야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응급의료 붕괴는 허구”라며 “의사들 말만 믿고 의료체계가 무너졌다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야당은 “의료대란이 의사 탓이냐”고 반박했다.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오후 8시50분부터 1시간 20분 동안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았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여러 문제는 있지만 비상진료 체계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지 6일 만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에 “전공의들이 빠져 의사 수가 부족한 부분을 군의관, 공중보건의 등을 투입해 잘 보완해가고 있다”며 “응급실이 붕괴돼서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후 민주당 의료 대란 대책 특위와 함께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나 “의대 증원의 규모 또는 기간을 어떻게 분산할지, 지역 공공 필수의료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고려해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의료 대란 문제는 충분한 대화나 합리적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강경하게 밀어붙여 생긴 문제”라고 했다. 이 대표는 병원 방문 전에는 “의료 대란이 의사 탓이라니, 그렇다면 민생파탄은 국민 탓이고, 경제파탄은 기업 탓이겠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실과 정부를 향한 비판이 나왔다.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통화에서 “(추석 응급의료 공백 위기론)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며 “응급의료 및 수술 분야에서 공백이 생기니 추석 연휴가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응급실 뺑뻉이, 의대 증원 탓 아냐”… 野 “정부 오만”
“‘응급실 뺑뺑이’는 의대 증원 때문이 아니라 응급의학 전문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생긴 문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을 하자고 한 것이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용산 대통령실의 태도가 너무 요지부동이라 자괴감까지 드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증원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규모나 기간 등에서 합리적 근거 없이 과도하고 급하게 추진돼 문제가 생겼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추석을 앞두고 응급실 대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야당은 4일 의료공백과 응급실 운영 차질을 놓고 대립했다. 대통령실은 “필수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하려는 게 의료개혁의 본질이다. 의대 증원으로만 한정하는 프레임은 허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정부의 대화와 의견 수렴 과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의대 증원 방침이 의료대란을 불렀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 尹 “의료진 법적 리스크나 보상 공정성 문제 해결하겠다”
윤 대통령은 4일 밤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 현장 점검에 나섰다. 올해 2월 의료개혁 발표 이후 찾는 9번째 의료기관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응급의료진을 격려하며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정혜전 대변인이 전했다.
또 한창희 병원장이 “이번 기회에 의료전달체제를 개선해, 환자 수가 아닌 진료 난이도로 보상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하자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의 수가 정책이나 의료제도가 이러한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피부미용이나 비급여 위주인 의원과 비교해 봐도 업무강도는 훨씬 높고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보상은 공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
이어 윤 대통령은 “고위험, 중증 필수 의료 부문이 인기과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 개선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앞으로 응급, 분만, 소아, 중증을 포함한 필수 의료 인력들에 대해 지원을 의료인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의료인의 법적 리스크나 보상의 공정성 문제도 해결해 소신 진료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향후 병원 현장 방문을 통해 의료진에게 의료개혁의 진정성을 알리겠다는 방침이다. 서울보다는 취약한 지역 의료 실태를 보강하고, 응급의료진 같은 필수 인력 기반을 늘리는 동시에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장상윤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은 “일각에서 붕괴, 마비, 이런 용어를 쓰는데, 그런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정부도 국민들의 심리적인 불안감, 이런 것들을 굉장히 신경 쓰고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언제든지 의료계가 합리적인 대안을 가져오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의료개혁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 추진 동력이 살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 李 “일방적 의대 증원 강행 재고돼야”
민주당은 “정부의 오만과 독선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고려대 안암병원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근본적 대책을 신속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붕괴 상황에 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이고 과하고 급한 의대 증원 강행이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응급의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며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비상 협의체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국민의 우려를 괴담이라고 폄훼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바로 괴담의 진원지”라며 “대통령실이 언제까지 분노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응급실 의료 공백에 눈을 감을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추석 연휴 응급의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회의에서 “각 의원이 본인의 지역구에 있는 응급실을 방문해 현황도 파악하고, 의료진에게 감사와 격려의 표시를 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지역 주민들이 응급실 뺑뺑이와 추석 응급의료 대란 등에 대한 우려를 호소하고 있다”며 “국민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대통령실과 정부의 설명과는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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