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간부들이 사채업자에게 3급 비밀 ‘암구호’를 담보로 넘긴 사건에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는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유사한 군사기밀 유출 사건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솜방망이 처벌’이 군 기강 해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회사 이익 위해 군사 비밀 훔쳐도 ‘무죄’
25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판결이 내려진 사건 중 대법원 판결문검색시스템과 법원도서관 등에서 확인이 가능한 15건의 판결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실형이 선고된 건 2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11건, 무죄가 2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탄약을 제조 및 납품하는 방위산업체 직원 6명이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국군의 탄약 사용량 관련 기밀을 빼돌린 사건은 무죄가 내려졌다. “국가 안보에 위기를 초래할 성격의 기밀이 아니고, 회사 내부에만 보고서를 올렸기 때문에 개인의 금전 목적이 아니다”라는 게 판단 이유였다.
암구호를 유출했지만 집행유예에 그친 사례도 있었다. 2022년 2월 육군 하사 출신 민간인 A 씨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본인이 근무했던 부대에 전화해 암구호를 알아낸 뒤 이를 지인들에게 누설했지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국내 잠수함 ‘장보고-III’ 등 민감한 군 무기 기술 정보를 빼돌린 사건들도 4건 모두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범행을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이 참작됐다.
●유출사범 대부분 전현직 군인·방산업체 직원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대부분 전현직 군인이나 방산업체 직원이었다.
취재팀이 분석한 15건의 사건 중 7건은 피고인이 전현직 군인, 6건이 방산업체 대표 및 직원들이었다. 나머지 2건은 전직 방위사업청 직원과 경찰이 범인이었다.
전직 군인들은 주로 복무 당시 가지고 있던 자료를 빼돌리거나, 군 시절 알던 지인을 통해 정보를 유출했다.
2016년 정보사령부 소속 장교는 2급 비밀문서를 자신의 군 경력을 자랑할 목적으로 외부에 유출했다.
대학교수로 근무 중인 전직 해군 준장은 평소 알던 군 지인으로부터 북한의 군대 체계, 부대 전투력 등 기밀 정보를 빼돌려 개인 연구에 활용했다.
방산업체 직원들의 경우엔 경쟁사를 따돌려야 한다는 실적 압박이 주된 범행 동기였다.
국내 방산업체 B의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은 ‘경쟁 업체는 해당 정보를 입수한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에 관한 자료를 빼돌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해당 직원들 중 일부는 2013년 해군본부 대령의 사무실에 방문해, 대령이 사무실을 빠져나간 사이 몰래 문서의 사진을 찍어 회사 내부망에 올렸다. 이 직원들은 전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또 다른 방산업체 C는 소속 직원이 회사 대표의 지시를 받고 군 사무실에 들어가 기술용역 보고서를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기밀 유출 등 기강 해이를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최근 벌어진 암구호 사건 등 군사기밀 유출 사건은 군 기강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유출사범에 대한 양형 수위를 높이는 한편, 방위사업청의 감사 기능을 강화해 전직 군인과 방산업체 직원들의 정보 유출을 적극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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