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9월 27일(이하 현지 시간) 30년 이상 벼른 끝에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공습을 통해 제거했다. 헤즈볼라는 일주일 만에 나스랄라의 사촌 동생을 수장으로 추대해 새 지도부를 꾸렸지만 이스라엘은 이마저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 출범한 헤즈볼라 지도부는 첫 회합을 가진 10월 4일 나스랄라와 같은 방식의 공습으로 제거됐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시내에 가해진 두 차례의 대공습에서 주민들은 ‘융단폭격’을 목도했다. 건물 몇 채가 몰려 있는 좁은 공간에 1~2분 사이 폭탄 수십 발이 떨어졌다. 가까운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지진으로 오인할 만큼 강력한 충격이 지축을 울렸다. 각각의 폭격 작전에 폭탄 80~100발가량이 투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대부분은 지하시설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특수폭탄, 일명 ‘벙커버스터’였다.
이스라엘군 전투기 25대 ‘융단폭격’
일반적으로 융단폭격은 폭탄 탑재량이 엄청난 폭격기가 수행한다. 이스라엘 공군에 폭격기로 분류할 만한 항공기가 없음에도 융단폭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현존 전투기 가운데 무장 탑재량이 가장 많은 F-15I가 대거 동원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최정예부대인 제69비행대를 이번 작전에 투입했다. F-15I 전투기 25대로 이뤄진 중동 최강의 타격력을 자랑하는 부대다. 당시 공습 작전에서 F-15I는 2000파운드(약 910㎏)급 대형 항공폭탄을 각각 6발씩 달고 이륙했다. F-15I 20여 대가 가한 폭탄 세례는 그야말로 융단폭격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 북한 지도부는 헤즈볼라 지하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작전을 보면서 상당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헤즈볼라는 북한과 오랫동안 교류·협력한 조직이다. 특히 헤즈볼라의 지하시설은 북한이 직접 건설했거나 기술을 제공해 구축된 시설이다. 게다가 한국 공군에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많은 F-15 전투기와 대량의 벙커버스터 무기가 있다. 유사시 이번 베이루트 공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강도의 지하시설 타격 작전이 평양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전 국토 요새화’ 노선에 따라 전국 각지에 엄청난 규모의 지하시설을 구축했다. 이에 한국군은 북한 지하시설을 파괴하고자 다양한 공격용 무기를 개발·도입했다. 현재는 지대지·공대지 무기가 벙커버스터 임무를 맡고 있다. 종류와 보유량, 위력 면에서 한국군은 이스라엘군을 압도한다. 특히 한국군은 전투기에서 투발할 수 있는 다양한 지하시설 공격용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소형 관통폭탄인 GBU-39 SDB는 물론, 이번에 이스라엘이 사용한 BLU-109 결합 유도폭탄 GBU-31도 갖고 있다. 이보다 훨씬 강력한 GBU-28과 장거리순항미사일임에도 강력한 벙커 파괴 능력을 지닌 타우러스 KEPD 350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무기 중에선 전술탄도미사일 KTSSM과 단거리탄도미사일 현무 시리즈가 벙커버스터 능력을 갖췄다. 게다가 배치 수량도 수백 개에 달한다. 벙커버스터가 지하시설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폭탄 구조와 폭발 원리를 알아야 한다. 흔히 폭탄은 금속 외피 안에 강력하면서도 작은 충격에는 쉽게 폭발하지 않는 둔감성 화약을 채워 넣은 것을 말한다. 여기에 화약을 원하는 타이밍에 폭발시키기 위한 신관을 결합한다. 신관 종류는 폭탄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물리적 충격으로 작동하는 충격신관(또는 접촉신관)과 전파 송수신 장치로 목표물과의 거리를 측정해 폭발하는 접근신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터지는 시한신관이 흔히 쓰인다. 이 같은 각종 신관 기술을 조합해 목표물에 충돌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터지게 만든 지연신관도 있다. 벙커버스터에 많이 사용되는 게 바로 지연신관이다. 폭탄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동안 내부 화약이 터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텔스기에 실린 벙커버스터, 은밀하게 北 지도부 타격
오늘날 쓰이는 벙커버스터는 탄체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관통력을 얻는 방식과 관통용 탄두를 따로 설치하는 방식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전자는 매우 무겁고 단단한 외피를 사용한 폭탄을 높은 고도에서 떨어뜨려 운동에너지를 극대화한다. 폭탄 투발 고도가 높을수록 위치에너지가 커지고 이는 폭탄에 더 많은 중력가속도가 붙게 만든다. 그만큼 관통력도 높아진다. 후자는 대전차무기에 사용되는 대전차고폭탄(HEAT) 기술을 활용한 방식이다. 탄두가 터질 때 폭발력이 전방으로만 쏠리는 노이만-먼로 효과에 의해 벙커를 관통한 후 본 탄두가 터진다. 강철 같은 금속성 외벽을 뚫을 때 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악마’ 벙커버스터 미사일의 가공할 위력
한국군의 항공기 탑재용 벙커버스터는 운동에너지를 사용하는 낙하·활공폭탄이다. F-15K, KF-16, F-35A 등 여러 전투기에 탑재되는 GBU-39 SDB는 무게가 110㎏에 불과한 소형 폭탄이다. F-15K 1대에 20발, KF-16과 F-35A에는 각각 8발을 표준으로 장착한다. 전투기에서 쏜 벙커버스터는 표준 무장 기준으로 110㎞를 활공해 날아가 표적에 명중된다. 전용 관통탄두를 붙이면 활공 거리가 60㎞로 줄어드는 대신 1~2m급 정밀도를 발휘한다. 이 경우 SDB는 1.2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폭발한다. F-15K, KF-16, F-35A에서 운용되는 GBU-31은 합동직격폭탄(JDAM)으로 불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폭탄의 일종이다. 2000파운드급 Mk.84 범용폭탄 대신 910㎏짜리 BLU-109 관통폭탄을 결합한 모델이다. 고고도에서 투발되면 31㎞를 날아가는 GBU-31은 일반 토양은 10~20m 이상, 강화콘크리트는 1.6m 이상 뚫고 들어가 폭발한다. BLU-109는 폭탄 외피를 25㎜ 강철로 감싼 데다, 내부에 TNT(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와 알루미늄 분말을 혼합한 폭탄인 트리토날이 250㎏이나 들어 있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다. 이 폭탄의 파생형인 BLU-118의 경우 열압력탄두를 사용한다. 갱도 입구에서 터뜨리면 순식간에 갱도 내부에 입자운(粒子雲)을 생성한 뒤 대폭발을 일으켜 터널 전체를 붕괴한다. BLU-109를 장착한 GBU-31은 북한에 특히나 위협적 존재다. 한국군이 39대를 보유 중인 F-35A 스텔스 전투기 내부 무장창에 GBU-31을 2발이나 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평양 상공에 침투해 북한 지도부 거주지를 고위력 벙커버스터로 초토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GBU-28은 BLU-109로도 파괴하기 어려운 지하시설을 타격하고자 개발된 고위력 벙커버스터다. 투발 중량이 4700파운드(약 2100㎏)로 앞서 소개한 BLU-109보다 2배 이상 무겁다. 고고도에서 투발하면 9㎞가량 날아가는데, 레이저 유도 방식이라서 매우 정밀한 타격이 가능하다. 일반 지면은 30m 이상, 강화콘크리트는 6m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일반 벙커의 강화콘크리트 외벽 두께가 2~3m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다.
F-15K에 탑재되는 타우러스 KEPD 350은 앞서 소개한 폭탄들과 달리 미사일이다. 무게가 1.4t에 달하는 이 미사일은 500㎞를 날아갈 수 있다. 복합유도장치를 사용한 덕에 명중 정밀도도 대단히 높다. 5.1m 길이의 미사일 안에는 2.28m의 긴 특수 탄두가 들어가 있다. 이름하여 메피스토(MEPHISTO), 즉 ‘고도로 정교하고 목표 최적화된 다목적탄(Multi-Effect Penetrator, HIgh Sophisticated and Target Optimized)’이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악마 같은 파괴력을 가진 이 무기는 전방 탄두가 화학에너지로 5~6m의 강화콘크리트를 뚫어 본 탄두의 길을 열어준다. 이후 벙커 내부로 쇄도해 들어간 본 탄두가 엄청난 위력의 폭발로 벙커를 무너뜨린다. 이 정도 전력만 나열해도 한국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시설 파괴 능력을 갖췄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국은 이보다 더한 괴물급 벙커버스터 무기를 수백 발씩 보유하고 있다. 바로 육군이 가진 다양한 유형의 탄도미사일이 주인공이다. 북한의 갱도 포병을 잡고자 개발된 KTSSM의 사거리는 1형 기준 180㎞, 2형 기준 300㎞에 달한다. 각각 고정식 발사대와 천무 다연장로켓에서 발사된다. 앞서 소개한 항공폭탄들이 아음속으로 표적에 떨어지는 반면, KTSSM은 마하(음속) 6 이상 속도로 타깃을 타격한다. 이 같은 엄청난 속도는 강력한 관통력으로 이어진다. 군 당국이 KTSSM의 관통력을 정확히 공표한 적은 없으나, 지하시설 파괴 실험 영상을 보면 수십m를 뚫고 들어가 열압력탄두로 거대한 지하터널을 초토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무후무한 괴물 미사일 현무-5
현무 시리즈의 위력은 더 놀랍다. 사거리 500㎞인 현무-2B는 탄두중량 1t·마하 7 이상, 사거리 800㎞인 현무-4-1은 탄두중량 2.5t·마하 9 이상 속도로 표적에 명중된다. 이들 무기 역시 정확한 관통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 토양 100~200m는 우습고, 강화콘크리트도 20~30m 이상 뚫고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한국군은 여기에도 만족하지 못해 최대 9t 탄두를 마하 10 이상으로 표적에 꽂아버리는 괴물 미사일 현무-5도 배치 중이다. 저위력 핵무기 수준의 관통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 미사일은 300~400m 지하에 있는 표적도 파괴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기다. 올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정권의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군은 유사시 다양한 고위력 벙커버스터를 각각 수십 발씩 평양의 북한 지도부 은거지에 쏟아붓는 작전계획을 수립해놓았다. 핵무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재래식 무기로는 이미 위력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벙커버스터에 직면한 북한 당국이 언제까지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