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최초 테스트 파일럿’ 정다정 소령의 루틴은 [BreakFirst]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0일 07시 00분


공군 전투조종사가 되기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전투조종사를 꿈 꾸던 수 많은 공군 장교들이 3단계의 비행교육 과정에서 낙방하거나 포기합니다.

그 중에서도 소수의 베테랑 전투조종사에게만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을 시험비행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안전성을 시험 평가하는 일이라 베테랑 조종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단 8명 뿐인 KF-21 시범비행 조종사(테스트 파일럿) 중 유일한 여군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공군시험평가단 시험평가센터 소속 정다정 소령(38)입니다. 171㎝의 큰 키와 쇼트커트 스타일의 머리, 중저음의 목소리, 군인 특유의 각진 말투였습니다.

‘여군’으로 주목한 주변의 시선과는 달리, 정작 정 소령은 그저 ‘군인’과 ‘전투조종사’로서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 왔는데요. “여군은 소수라 무엇이든 조금만 못해도 확연히 티가 나고, 조금만 잘해도 티가 난다. 그렇다면 잘해서 티가 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정 소령의 이야기를 〈브렉퍼스트〉팀과 함께 탐구해보시죠.

‘여군 최초 KF-21 시험비행 조종사’ 정다정 공군 소령에게 군생활을 15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원동력에 대해 묻자 그는 “나보다 군생활을 훨씬 오래 하신 선배님들이 있어서 말하기 부끄럽다”면서도 “책임감”이라고 답했다. 이어 “내가 갖춰야 할 역량이 있는데 갖추지 못하면 내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나를 끌어 올려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여군 최초 개발시험비행 조종사’의 루틴
정 소령은 5년 전인 2019년 개발시험비행 교육과정에 선발되면서 최초의 여군 테스트 파일럿이 됐습니다. 올해 8월에는 KF-21 개발시험비행 자격을 획득했고요. KF-21은 한국이 자체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입니다. 2026년 실전 배치가 목표인데, 현재 6대의 시제기가 개발시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테스트 파일럿이란 개념 자체부터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테스트 파일럿은 연구 개발 중인 항공기를 운항해보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체가 견딜 수 있는지 성능과 안정성을 시험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 소령은 자신의 역할을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자동차에 사용자를 위한 설명서가 있듯, 공군에 도입되는 항공기나 무장 항공전자 장비들을 제일 먼저 테스트해 이들의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이죠.

그는 덤덤하고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테스트라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테스트 과정에서는 일부러 엔진을 껐다 켜기도 하고, 항공기를 조종 불능 상태에 빠뜨려본다고도 하는데요, 그래서 조종사의 숙련도가 더욱더 중요합니다.

테스트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네 대의 전투기를 지휘할 수 있는 ‘4기 리더’거나 총 비행시간이 700시간 이상 돼야 하고요. 선발되고 나서도 실전에 투입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약 11개월, 해외에서 약 7개월간 실무연수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에서는 운영하지 않는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도 경험해 보게 됩니다.

개발시험비행조종사가 된 정다정 공군 소령이 캐나다에서 실무연수를 받으며 다양한 항공기를 타보고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개발시험비행조종사가 된 정다정 공군 소령이 캐나다에서 실무연수를 받으며 다양한 항공기를 타보고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경험과 경력이 쌓인 전투기 조종사 가운데서도 엄선해 뽑은 ‘소수 정예 요원’이고, 선발 후에는 연수도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항공기 문제가 목숨과 직결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안전이 걱정됐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정 소령은 담담했습니다.

“지상에서 엔지니어들이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충분히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조종사랑 공유해서 토의합니다. 식별된 위험 요소는 컨트롤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위험 요소라기보다는 어떤 시험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정 소령에게도 긴박한 순간은 있었습니다. K-21을 조종하던 중 갑자기 뇌우가 쏟아진 것이었는데요. 항공기가 번개를 맞는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시제기에는 많은 센서가 달려있어서 비에 젖을 경우 텔레메트리를 통해 연결되는 장비들의 신호가 끊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상태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지상에서는 모니터링을 할 수 없어서 조종사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비가 내리면 활주로가 미끄러워져서 (안전에) 취약해져요. 착륙할 때 활주로를 이탈할 수도 있고요. 뇌우가 갑자기 쏟아진 날, 착륙을 하려는데 비 때문에 시야까지 잘 확보가 안되더라고요. 활주로에 켜있는 불빛과 지시를 보고 잘 착륙하긴 했는데, 제겐 그날이 되게 긴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정다정 공군 소령이 K-21 앞에서 엄지를 치켜 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공군 제공.
테스트 파일럿의 하루는 촘촘하게 돌아갑니다. 우선 아침에 출근을 해서 사무 업무를 처리하고, 그날 있을 비행 임무를 살펴보고요. 이어 시뮬레이터로 모의 비행을 해본 뒤 엔지니어들과 당일의 기상 상황과 임무, 비정상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실제 비행을 하게 됩니다. 비행이 끝난 뒤에는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향후 반영해야할 것들은 무엇인지 체크하고요.

“시험비행이든 일반 비행이든 비행이 매일 있다 보니 비행할 때 변수를 줄이기 위해 컨디션과 기분 등 일상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전 6시에 일어나고, 일과가 끝나면 개인 체력 단련 운동을 하거나 동호회 사람들과 테니스, 족구를 해요. 오후 11시가 되기 전에 자려고 합니다.”

유난히 내향적이었던 그가 군인의 길을 택한 이유
남성 군인보다 여성 군인이 훨씬 드물죠. 그래서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고생이던 정 소령은 어떤 계기로 공사에 진학하게 된 것일까요.

“저희 집이 충북에 있어요. 주말에 청주나 대전에 가면 정복을 입고 외출을 나온 사관생도들을 많이 봤는데요. 그때마다 용모가 깔끔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인상을 받아 매력을 느꼈어요. 그러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사관생도가 와서 공사에 대한 소개를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때 딱 ‘나도 공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공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 시절의 정다정 공군 소령 모습. 정다정 소령 제공
공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 시절의 정다정 공군 소령 모습. 정다정 소령 제공
목표대로 2005년 공사 57기로 입학한 정 소령은 4학년 때 ‘전대장 생도’도 맡았습니다. 전대장 생도란 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비슷한 것인데요, 여생도가 전대장 생도를 맡은 것은 공사 역사상 정 소령이 두 번째입니다. 정 소령 이후로는 여생도가 전대장 생도를 맡은 사례는 없다고 하고요.

“저는 엄청 내향적인 사람이었고, 1,2학년 때는 체력적인 면에서 유독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이걸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훈련강도도 세지는데요, 점점 발전해나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생도생활을 후배들이랑 나누고 싶었어요. ‘다정 선배도 해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좀 심어주고 싶기도 했고요.”

정다정 공군 소령이 공군사관학교의 전대장 생도를 역임하던 시절 자신의 명패 앞에 앉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정다정 공군 소령이 공군사관학교의 전대장 생도를 역임하던 시절 자신의 명패 앞에 앉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공사로 진학해도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군수, 방공포병, 항공관제 등 각자에게 부여된 특기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요. 정 소령은 전투조종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험난해요. 훈련 자체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그 훈련을 거치면서 ‘나 이거 꼭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책임감과 자부심, 자긍심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저는 조종사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훈련 과정 중 정 소령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해 전투를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일명 ‘작전 가능 훈련(CRT·Combat Readiness Training)’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전까지는 스스로가 얼마나 조종을 잘하는지에만 집중하면 됐다면, CRT에서는 상대편이 갖춘 무장까지 고려해서 유불리를 따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군에 따르면 전투조종사 가운데 여군의 비율은 약 4%입니다. 애초부터 공사의 여생도 정원이 전체 정원의 10% 정도로 절대적인 인원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혹 여군이 전투조종사를 하기에는 능력이 부치는 걸까요? 정 소령의 답은 ‘그렇지 않다’였습니다.

“신체적으로 물리적인 힘 자체가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조종사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신체 기준을 충족하면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행에 있어서는 남자라서, 여자라서 더 유리하거나 불리한 것은 없다고 봐요. 비행기 자체는 무겁고 마하의 속도로 날지만, 제가 저의 물리적인 힘으로 비행기를 날리거나 들어서 옮기는 것은 아니잖아요.



“얽매이지 않기 위해 징크스 안 만들어”
그동안 정 소령이 비행한 시간은 약 1400시간입니다. 많은 시간을 비행한 만큼, 크고 작은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겠죠. 상공에서 정 소령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을까요.

“어제는 문제가 없던 비행기여도 오늘은 장비가 갑자기 작동을 하지 않을 수 있고, 항공기 결함이 생길 수 있어요. 저도 몇 번 겪었거든요. 그런데 비행할 동안에는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어요. 당장의 문제를 처치해야 하고, 응급 조치를 취해 무사히 랜딩(착륙)해야하기 때문이죠. 나중에 착륙 후에야 ‘이 상황은 좀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정다정 공군 소령이 시뮬레이터로 모의비행을 하기 위해 조종석에 앉아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정다정 공군 소령이 시뮬레이터로 모의비행을 하기 위해 조종석에 앉아 있다. 정다정 소령 제공.
비행 안전에는 조종사의 피로도와 심리상태가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거나 뒤숭숭한 꿈자리 등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조종사에게는 그날 비행을 빼주기도 하고요.

조종사 개인에 따라서는 징크스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예컨대 어떤 양말을 신었을 때 착륙을 좀 더 부드럽게 한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정 소령의 징크스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부러 징크스를 안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징크스가 생기면 너무 거기에 얽매일 것 같아서요.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이 두 가지 모두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만 정해진 임무와 그에 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정 소령에게 전투조종사로서, 혹은 비행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그는 ‘비상대기를 서던 어느 추석 연휴’라고 답했습니다. 비상대기란 육군으로 치면 전방 GP, GOP에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야간에 출격 명령이 내려와서 상황 조치를 하고 초계 비행, 패트롤(순찰) 비행을 하던 때였어요. 비행기 아래로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들의 불빛을 보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 채 명절에 즐거운 행보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제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모든 답변이 군인다워서, 혹시 사뭇 다른 답변을 할까 싶어 앞으로의 꿈과 목표에 관해 물었습니다. ‘모든 조종사의 목표는 다 똑같을 것’이라며 입을 뗀 그는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게 조종사의 존재 이유기 때문에,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해야 될 그날의 테스트와 과업을 잘 수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는 조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군인의 정석’ 같은 정 소령도 인터뷰 중 의외의 답변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셨을 것 같나요?
저는 농사를 짓고 살았을 겁니다. 저는 평화주의자거든요. 평화롭게 들판을 거닐고 바람도 쐬고, 물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먹고싶고 수확하고싶은 것들을 뿌려 그날그날 소출하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늙으면 농사짓고 살고 싶습니다.

―스카이다이빙 해보셨나요?
아니요 안해봤어요. 못할 것 같아요(웃음). 생도 때 공수훈련을 하면서 낙하산 메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했지만 그 이후로 자의로 뛰어내린 적은 없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놀이기구도 잘 못탑니다.
정다정 공군 소령은 롤 모델로 자신의 부모님을 꼽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꾸준히 농사를 지으시며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며 “존경하고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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