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소식통 “문구 조율하다 빠진듯”
韓국방부 “양국 비핵화 견지” 진화
대선 앞둔 美양당, 정강서 비핵화 빼
“북핵 사실상 인정 기류 반영” 해석도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제56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비핵화’란 단어가 빠졌다. 한미 국방 최고위 연례 협의체인 SCM 공동성명에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비핵화’ 표현이 있었지만 올해 9년 만에 사라진 것. 논란이 일자 우리 국방부는 “한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최근 미국 내에서 북한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이런 기류가 미 국방부 입장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도 비핵화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도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문구 넣고 빼다가 신경 쓰지 못했다”
한미는 북한이 1년에 두 차례 핵실험(4, 5차)을 감행한 2016년부터 SCM 성명에 ‘비핵화’를 기본 문구로 포함시켜 왔다. 앞서 성명들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 “북한의 비핵화와 도발 중단만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등으로 들어갔던 것.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 지난해에도 SCM 성명에는 “북한 정권이 비핵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공조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있었다. SCM 공동성명은 한미동맹의 향후 1년간 방향성을 축약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표현이 사라진 것을 두고 정부 소식통은 “한미동맹에서 비핵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한미 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이견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다만 “비핵화가 기본 중 기본인 만큼 공동성명의 다른 문구들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은 있다”고도 했다. 한미가 힘을 주고 비핵화 문구를 덜어낸 게 아니라 의도치 않은 실수 등으로 빠졌을 순 있다는 의미다.
이 소식통은 또 “미국의 북한에 대한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며 미 측이 비핵화 문구를 빼자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외교 소식통은 “SCM 성명에 비핵화 문구가 빠진 건 한미 간 이견이라기보단 양 국방 당국이 북한의 최근 핵 능력 고도화와 그 위협 수준, 위협 대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했다.
● 대선 앞 美 양당 정강 정책서 비핵화 목표 빠져
하지만 정부 안팎에선 ‘비핵화’ 표현이 빠진 상황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단계까지 왔다는 일부 미 정부 안팎의 회의론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것. 북한도 최근 이런 미국의 기류를 이용하듯 자신들이 이미 다량의 핵을 보유한 ‘핵보유국’임을 분명히 밝히며 차기 출범하는 미 행정부와는 이 지위를 전제로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등 핵 담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7일 “핵 강국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북핵 억제, 북핵 위기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라 우리 정부가 공동성명에 비핵화 포함을 밀어붙이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미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은 4년 만에 새로 채택한 정강 정책에 모두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목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올해 SCM 공동성명엔 비핵화 대신 “(한미) 양측은 (중략) 북한의 핵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노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를 두고도 북한의 핵 고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수준까지 온 만큼 보다 현실적인 목표인 핵 완성 ‘지연’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철균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실수로 뺀 게 아니라면 실현 가능성이 낮아진 비핵화란 문구를 수사 수준에서 담기보다 핵 개발 지연 등 한미 국방채널이 실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북핵 현실론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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