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파병 부대가 열차편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보낸 부대가 최정예 ‘폭풍군단’이고 1만2000명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10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쿠르스크 동부 지역에 북한군 예비 집결지 겸 훈련소로 활용될 2개 연대가 배치됐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10월 25일 북한군 한 부대가 첫 교전에 투입돼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다는 첩보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병력이 러시아 도착 일주일 만에 전선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전쟁에서 중요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령대로 구성된 ‘신참’들이 이질적인 환경의 전장으로 가면서 적응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표현대로 이들 역할이 ‘총알받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北 파병 부대, 첫 교전서 다수 전사”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장령(장성) 3명과 군관 500여 명을 관리자로 파견했다. 러시아는 이들을 전체적으로 관리·통제하는 책임자로 국방부 전투훈련담당차관인 유누스베크 옙쿠로프 상장(上將: 한국군 중장급)을 임명했다. 러시아 국방부에 대외 군사 협력을 총괄하는 차관이 따로 있음에도 전투훈련담당차관이 나섰다는 것은 러시아가 북한 병력을 직접 지휘·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북한군 선발대가 러시아 공수군 제11근위공중강습여단 예하 ‘부랴트대대’로 편성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정상 입대한 징집·계약병이 아닌 병력 자원은 대부분 이른바 ‘스톰(Storm)-Z’ 돌격부대로 편성한다. 이름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총알받이에 불과한 돌격대다. 주력 부대가 공격해 들어가기 전 우크라이나군의 탄약을 소진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러시아 입장에선 스톰-Z로 동원된 북한군을 상대로 별다른 전술 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북한이 격전지에 총알받이 병력을 보낸 이유는 역시 ‘떡고물’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인 키릴로 부다노프 중장은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료로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평양과 모스크바 간 비밀 거래를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북 지원 목록에는 소형 전술 핵무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시스템에 필요한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간 러시아는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를 피해 불법 미사일·핵 개발을 진행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왔다. 북한군 파병을 계기로 러시아의 지원이 대량살상무기 기술을 직접 넘기는 수준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이런 행보는 대한민국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스템 능력 확보다. 이 시스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만 확보한 ‘게임 체인저’다. 물속에 장기간 머물며 탐지 수단을 피하고 유사시 적 영토에 대량의 핵미사일 공격을 날릴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이 원자력잠수함(원잠) 건조에 나선 정황이 있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관련 기술과 인프라가 없는 북한이 원잠 건조에 나섰다면 러시아 지원에 힘입었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이 원잠과 SLBM 발사 시스템을 확보한다는 것은 그들이 ‘핵 보복 타격(second strike)’ 능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북한이 핵 능력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전략적 협상에 나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 미국 대선 정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미국과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채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북한에 핵심 군사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한국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적대 행위다.
러시아, 북한에 ‘핵 보복 타격’ 능력 지원 우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러시아 도발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가진 공동 언론 발표에서 “북한이 특수군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한다면 단계별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한반도 안보에 필요한 조치를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 여하에 따라 단계별로 국제사회와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정부 또는 군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에 지원 가능한 무기 후보군과 관련한 보도를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1순위로 요청했다는 ‘천궁-2’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신궁’ 보병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군 소식통은 언론에 K-2 전차나 K-9 자주포, K-239 천무 다연장로켓 시스템을 거론하며 “고(Go) 사인만 떨어지면 즉각 만들어서 보낼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필자 견해다. 우선 한국 안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무기를 보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소량 공급하더라도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우선 천궁-2는 우크라이나가 가장 필요로 하는 무기이지만 당장 공급이 달린다. 한국군에 납품할 것도 넉넉지 않은 데다, 먼저 수출해야 할 물량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천궁-2를 공여한다면 한국군 자산을 빼내야 한다. 우리 미사일 방어망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라크가 발주한 물량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납기 및 가격을 놓고 국내 제조업체 간 갈등까지 불거진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천궁-2를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K-2 전차나 K-9 자주포, K-239 천무 다연장로켓은 한국군 보유 자산을 먼저 공여하고, 보충 물량을 추가 발주하는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적절치 않아 보인다.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K2 전차는 능동방어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러시아 대전차 무기나 드론 공격에 대단히 취약하다. 미국과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M1A1, 레오파르트 2 전차가 허무하게 파괴·노획돼 러시아의 선전 수단 혹은 장비 분석용으로 악용되고 있다. 한국군 장비도 같은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이 한국군 장비를 노획할 경우 민감한 기밀자료가 유출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K-방산 장비는 논외로 쳐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줄 수 있는 무기는 많다. 불곰사업을 통해 들여온 러시아 장비들이 그것이다. 한·러 방산협력협정에 따라 이들 장비의 제3국 공여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러시아가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 북한에 전략무기 기술을 넘겨주고 있는 정황이 포착된 상태다. 한국만 러시아와의 협정에 얽매일 이유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만한 러시아제 보병용 장비로는 9K115 ‘메티스-M’ 대전차미사일과 9K38 ‘이글라’ 보병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 있다. 이들 모두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사용 중인 장비인 데다, 군수지원체계도 갖추고 있다. 또한 ‘현궁’ ‘신궁’ 등 국산 장비로 대체되는 구형 무기라서 전력 공백 우려도 없다.
러시아제 전차·장갑차·헬기 등 우크라이나에 공여 가능
우크라이나 공여를 고려할 만한 기갑장비도 많다. T-80U 전차 35대, BMP-3 보병전투장갑차 70여 대가 그것이다. 한국군이 보유한 T-80U는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T-80 계열과 엔진 등 일부 부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은 장비를 탑재했다. 또한 러시아군이 운용하던 동종 전차 상당수가 이미 우크라이나군에 노획돼 쓰이고 있다. 한국이 가진 물량을 지원받으면 우크라이나가 즉시 전력으로 투입해 쓸 수 있다. BMP-3 또한 우크라이나군이 사실상 동종 모델을 러시아군으로부터 빼앗아 사용하고 있다. 전차 35대와 장갑차 70여 대는 당장 1개 기계화여단을 꾸릴 수 있는 전력으로,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산불 진화용으로 많이 쓰는 Ka-32 계열 헬기도 유력한 공여 후보다. 한국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세계 최대 Ka-32 보유국이다. 서방 세계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부품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기관과 군이 운용하는 기체 50여 대는 대체할 시기가 도래하기도 했다. Ka-32를 국산 헬기로 대체하고 우크라이나에 공급한다면 공중 기동 전력 부족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과 협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탄도미사일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 한국이 사거리 500㎞인 현무-2B 탄도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다고 치자.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를 타깃으로 신속·정밀 타격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간 우크라이나의 드론·미사일 공격을 통해 입증된 것처럼 모스크바 방공망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형편없다. 우크라이나가 현무-2B 같은 고성능 탄도미사일을 손에 넣으면 러시아에는 대단히 심각한 위협이 된다. 종말단계에서 궤도 수정은 물론, 적 요격 회피용 디코이(decoy)까지 갖춘 현무-2B는 현존하는 방공 시스템을 대부분 돌파할 수 있다. 원형공산오차가 5m 미만이라서 여차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크렘린궁 집무실 창문을 정확히 강타할 수 있는 무기다. 북한의 파병과 북·러 군사협력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다. 정부의 지상 목표는 러시아의 첨단 전략무기 기술이 북한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전략무기 기술을 제공한다면 한국도 우크라이나 손에 크렘린궁을 초토화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쥐어줄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일각에선 자칫 러시아의 반발로 한·러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3년 가까이 미국과 서방 세계로부터 무기 지원 압력을 받았음에도 최대한 중립 입장을 취했다. 러시아와 관계를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한국 측에 대북 전략무기 기술 지원이라는 비수를 먼저 들이민 쪽은 러시아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북·러 전략무기 기술 협력을 차단해야 한다면 반대로 러시아가 가장 두려워할 카드를 넌지시 꺼내 보여야 한다. 한국은 ‘능력’이 이미 차고 넘친다. 이제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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