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만 명 넘는 대규모 전투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하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들이 어떤 변수가 될지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러 양국은 공식적으로는 북한군 파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북한군 파병과 관련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애써 차단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군사 강국이 우크라이나 하나 상대하지 못해 남에게 손을 벌렸다는 자존심 문제 때문이다. 북한은 대규모 희생이 예상되는 전장에 1만 명 넘는 대군을 보냈다는 게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체제가 불안정해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북한군을 상대하게 된 우크라이나는 북한 파병을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러시아 이외 국가가 대규모 전투 병력을 보내 참전했으니 이제 이 전쟁은 국제전이자 진영 충돌 전쟁이 됐다”는 게 우크라이나 측 주장이다. 따라서 서방 세계, 특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로선 파병된 북한군의 능력을 최대한 부풀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북한과 러시아의 정보 통제, 서방 세계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우크라이나의 역정보 공작 때문에 북한군이 쿠르스크에서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여건에선 다양한 정보와 역정보를 취합해 교차 검증함으로써 현장 상황을 추론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북한군, 쿠르스크 전선 4개 방면 러시아군 배속
현재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쿠르스크 돌출부를 기준으로 4개 방향의 러시아 부대에 배속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 우크라이나 종군기자 로만 보츠칼라, 비정부기구 ‘블루·옐로’의 요나스 오만 대표, 현재 쿠르스크에서 작전 중인 우크라이나군 제95공중강습여단과 제103영토방위여단, 러시아군 제810근위해군육전여단 등 관계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정보를 필자가 취합해 분석한 결과다. 우선 쿠르스크 돌출부 동부 지역의 러시아 공수군 제11근위공중강습여단에 북한군 병력이 배치된 것이 확인된다. 돌출부 북쪽에 있는 흑해함대 예하 제810근위해군육전여단, 돌출부 북서부와 서부의 제106근위공수사단, 제56근위공중강습연대 등 3개 부대에도 대대급 이상 규모의 북한군 병력 배치가 확인되고 있다. 여러 소식통과 미국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북한군을 독립부대로 편성해 투입하지 않고 자국 부대로 통합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군이 건제(建制)와 지휘계통을 유지한 채 전투에 투입되지 않고, 러시아군 통제를 받아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 제810근위해군육전여단 관계자가 SNS에 올린 내용을 보면 북한군 30명이 1개 그룹으로 편성돼 있다. 여기에 통제장교 3명, 통역 1명, 중화기담당 1명, 보급담당 1명 등 6명의 러시아 측 통제·지원 인력이 붙는다고 한다. 병력 규모만 놓고 보면 소대 단위로 1개 그룹을 편성한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군 소속의 통제·지휘 인력을 붙인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소총소대는 아니다. 특히 통제장교가 3명이라는 점이 비정상적이다. 지휘관·정치장교·독전관(督戰官)의 통제하에 적진으로 자살 돌격을 감행하던 옛 소련의 형벌대대(штрафной батальон), 이른바 ‘슈트라프바트(штрафбат)’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北 병력 30명당 러 장교 3명 붙어 감시
슈트라프바트는 독소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7월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227호 명령에서 시작된 제도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군 장병 누구도 후퇴해선 안 된다. 후퇴하는 자는 ‘인민의 적’으로 규정해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지휘관이나 정치장교에게 명령을 어기고 자리를 이탈하는 자를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여기서 즉결 처분은 현장에서 총살하는 형태도 있었지만 슈트라프바트에 말 그대로 ‘총알받이’로 보내지는 처분이 많았다. 스탈린이 “인민의 적을 총살하는 데 쓸 탄약도 아깝다”며 형벌부대 운영을 다그쳤기 때문이다. 슈트라프바트에 편성된 죄수 병사는 소총 1정과 최소한의 탄약만 받은 채 전장 최일선에서 돌격해야 했다. 사실상 자살 돌격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슈트라프바트가 돌격할 때 이들 뒤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정치장교와 독전관이 있었다. 눈앞의 적이 무서워 주춤하면 독전관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형벌부대에서 보통 돌격 임무를 10회 성공하면 사면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임무를 모두 완수하고 살아남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도 전공은 다른 부대에 돌아갔다. 형벌부대 뒤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전황이 유리해지면 달려와 깃발을 꽂는 근위(guard) 칭호 정예 부대들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근위 칭호를 쓰는 부대들에 북한군 병력을 배속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소련 형벌부대와 유사한 편성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북한군 병력을 인수한 부대는 제11근위공중강습여단, 제106근위공수사단, 제56근위공중강습연대, 제810근위해군육전여단 등 모두 근위 칭호를 사용하는 부대다. 러시아는 북한군 장교·병사의 계급 및 건제를 무시한 채 30명 단위로 그룹을 만들고 러시아군 통제장교 3명을 붙였다. 소련의 슈트라프바트와 같은 개념으로 북한군을 이용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11월 8일(현지 시간) 쿠르스크 지역에서 촬영한 것이라며 러시아 군사 블로거가 SNS에 올린 보급품 사진도 북한군이 과거 슈트라프바트처럼 총알받이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당 보급품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기관총으로, 현재 북한군이 분대지원화기로 쓰는 ‘73식 대대기관총’이다. 이 기관총은 북한이 만든 체코제 Vz.26 기관총 모방형이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이 사용한 Vz.26의 성능을 높이 평가한 김일성이 개발을 지시한 것이다. 대대(大隊)에서 사용하는 기관총이라는 뜻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적을 죽이라”는 의미에서 ‘대대(大大)’다. 원래 북한은 1960년대 후반 소련의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 당시 소련군 주력 기관총이던 PK 기관총을 ‘68식 기관총’이라는 명칭으로 자체 생산했다. 68식은 PK 기관총과 같은 구조라서 탄약과 부품이 호환됐고, 탄띠 급탄식 시스템을 채택했다. 그런데 1973년에 생산되기 시작한 73식 기관총은 PK가 아닌 Vz.26을 기반으로 설계돼 호환되지 않는 부품이 많았고 무게도 더 무거웠다. 북한이 소련 제식 기관총을 면허생산하던 와중에 73식 대대기관총이라는 새로운 총기를 도입한 이유는 뭘까. 탄띠 급탄식 기관총인 PK가 돌격전을 수행하는 보병용으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K 기관총은 100발 탄띠를 탄통에 넣고 총에 결합해 사격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탄통을 붙인 기관총 무게가 13㎏에 달한다. 체구가 작은 북한군이 이 정도 무게의 무기를 들고 적진으로 뛰어가며 사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30발 탄창을 사용하는 Vz.26 기관총 설계를 눈여겨보고 이를 모방한 73식 기관총을 만든 것이다.
김정은 정권에 북한군은 도구 겸 노예
73식 기관총은 전작인 68식 기관총처럼 탄띠를 연결해 일반 기관총처럼 쓸 수 있지만 탄통을 붙여 사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총 윗부분에 30발 탄창을 붙였다. 북한은 이런 구조의 기관총이 돌격전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일렬로 제압사격을 하며 전진하는 방식, 즉 6·25전쟁 때 중공군이 쓰던 전술을 똑같이 구사하고자 73식 기관총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북한군이 73식 기관총으로 사격 훈련을 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겨드랑이에 개머리판을 끼운 채 총열 아래 양각대를 잡고 ‘지향사격’을 하는 모습이다. 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병사의 임무는 돌격할 때 적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제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밀 조준이 필요 없고 지향사격 정도면 충분하다. 쿠르스크 전선에 보급되고 있는 73식 대대기관총은 구조나 작동법이 러시아군 PKM 기관총과 다르다. 따라서 러시아군 보급용이 아닌 북한군 화력지원용일 가능성이 크다. 이 기관총이 △일렬 돌격 전술에 쓰려고 만들어진 점 △쿠르스크에 배치된 북한군 편제가 소련 슈트라프바트와 유사한 점 △최근 러시아군이 적 방어선 주요 화점을 돌파·파괴하는 데 쓸 장갑차가 부족해 인해전술 돌격전을 편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파병 북한군의 임무를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총알받이다. 사실 북한군을 총알받이로 쓰는 것은 러시아나 북한 입장에서 윈윈(win-win)하는 거래다. 현재 러시아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3년 동안 전쟁에서 7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데다, 계속되는 모병과 ‘비밀 동원’으로 군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인력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인을 병역 자원으로 쓰기에는 당장 인건비뿐 아니라, 부상·전사했을 때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과 연금 부담이 너무 크다. 이에 러시아는 외국, 특히 저개발국 출신 용병을 점점 더 많이 쓰고 있다. 러시아인 계약병은 1년 계약에 거의 7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반면 저개발국 출신 용병은 그 절반도 안 되는 비용이면 고용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용병이기에 전사하더라도 러시아가 보상금이나 연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반면 최빈국 북한에 남아도는 것은 병력뿐이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군인은 ‘수령 결사옹위’를 위한 도구이자 자기네 호화 생활을 위한 노예에 불과하다. 기존에 북한군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인력 집약적 군대로서 한미연합군을 상대할 요량으로 대규모 병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핵무기가 완성되자 이들 병력은 군량미만 축내는 잉여자산이 됐다. 당장 쓸모없는 병력으로 큰돈을 벌고 핵·전략무기도 강화할 수 있는 러시아 파병은 김정은에게 그야말로 남는 장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현재 1만1000~1만2000명에 달하는 파병 규모를 더 키울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북한군 전사자가 지구 반대편에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사자 늘수록 북한 전략무기 능력↑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서둘러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우리 헌법상 북한은 반(反)국가단체이고, 북한 주민은 반국가단체에 잡혀 있는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 장병이 살아서 그 지옥을 탈출할 수 있도록 심리전과 탈영 유도에 나서야 한다. 이런 조치는 당장 한국의 안보 실익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많은 병력을 보낼수록 김정은이 받아낼 수 있는 반대급부도 커진다. 김정은 정권이 러시아로부터 전략무기 기술을 받아와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북한이 아닌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전략무기 기술을 제공해 서울의 안전을 위협하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유용한 무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알려야 한다. 가령 크렘린을 일격에 초토화할 수 있는 현무-2B 같은 타격 무기를 제공한다면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결단이 늦어질수록 헌법상 우리 국민인 북한 군인은 더 많이 죽어나간다. 또한 그들의 목숨값으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유용한 군사기술을 챙겨 한국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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