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추진됐던 ‘사도광산 추도식’이 한일 간 이견으로 반쪽으로 진행되며 매년 추도식을 개최하기로한 한일 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26일 제기된다.
당초 정부는 지난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 위치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추도식에 정부 대표인 박철희 주일대사와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가족 9명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추도식 개최 전날, 불참을 결정했다. 한일 외교당국 간 막판 협의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25일 추도식 불참 배경과 관련해 “일본 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외교가에선 일본 측 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 역시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도광산 강제징용자에 대한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우리와 합의한 것이다.
일본은 유산 등재 컨센서스(전원동의)를 위해 ‘매년 7~8월 추도식 개최’, ‘강제동원 피해를 알리는 전시물 설치’ 등 2가지 약속을 하며 한국의 ‘찬성표’를 받아냈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에 앞서 광산에서 2㎞ 거리인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에 강제동원 안내전시물을 설치했고, 정부도 이를 평가했지만 정작 전시물에 강제징용과 관련한 내용이 부실하게 실려 문제가 됐다.
또 매년 7~8월에 개최하겠다던 추도식도 11월 말에서야 날짜가 확정됐다. 일본은 자민당 총재 선거 등을 지연 이유로 들었지만, 국내 일각에선 일본의 ‘여측이심’(如厠二心·‘뒷간에 갈 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을 문제 삼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어렵사리 추진된 이번 추도식에서 일측은 끝까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을 고수하고, ‘인사말’로 표현된 추도사에도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만 넣었을 뿐 이들이 강제로 사도광산에 징용됐다는 표현은 넣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25일 사도시에 위치한 조선인 기숙사 터 제4상애료(소아이료)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자체 추도식을 개최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의 자체 추도 행사 개최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이라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을 발표하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물컵의 절반’을 채웠으며, 나머지는 일본의 몫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과거사는 타협이 불가하다’라는 입장이 더해진 것은, 물컵의 절반을 채울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에 불거진 문제의 새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내년 추도식 참석도 어렵다는 논리가 구성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25일 우리 측의 불참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이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한일 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낮지 않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선 한일 간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추도식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날 “접점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 추도식에 우리가 가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일본도 자신들만 참석하는 반쪽 추도식을 굳이 개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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