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헌법학자들 사이에선 최 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관련 법령과 헌재 결정을 고려했을 때 대통령실 및 관저 의혹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원장을 탄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감사원장이 국회에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는 탄핵소추 이유에 대해서도 법조계 인사 상당수는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문제는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시점부터 결정이 나올때까지 최 원장의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최 원장을 비롯해 7명 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6인 체제’로 운영된다. 감사원 내부에선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위원들과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위원들이 ‘3대 3’으로 나뉘어 대립할 경우 주요 감사 결과를 의결하지 못하는 ‘업무 마비’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감사원은 민주당이 최 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보고할 예정인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탄핵 소추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감사 제대로 안했다는 이유로 탄핵은 불가능”
공직자가 탄핵되려면 파면될 정도의 ‘중대한 위법’을 저질러야 한다. 헌재가 2004년 5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 건을 기각하고, 2017년 3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일관되게 제시한 탄핵의 ‘기준’이다. 공직자가 실제로 법을 위반했고, 이런 위법이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일때만 헌재가 파면을 선고하게 되는 것. 실제 1988년 헌재 출범 이후로 접수된 8건의 탄핵 심판 청구 사건 중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린 건 박 전 대통령 탄핵 건이 유일하다.
과거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봤지만 “파면할 정도로 헌법수호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면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할 당시 ‘비선실세’ 였던 최순실 씨의 사익 추구를 도운 사실을 거론하면서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최 원장의 탄핵 사유가 헌재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최 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 방침을 밝히면서 용산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 의혹 감사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연관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헌재는 2017년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동안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탄핵사유는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된 경우로 제한되고,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는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선례가 있다.
민주당은 최 원장이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 공사’ 관련 감사위원회 회의록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 등 국회증언감정법을 위반했다는 점도 탄핵 소추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헌재 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탄핵심판) 인용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당시 상황을 종합했을 때 국회증언감정법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설령 법위반으로 보더라도 파면할 정도 사안인지는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심판) 인용 가능성이 낮다”며 “이미 헌재가 임성근 전 부장판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안동완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안을 기각했는데 (최 원장의 경우가) 이보다 심각한 확실한 불법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최 원장은 올 10월 24일 감사원 국정감사 당시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 공사’ 관련 감사위원회 회의록을 요구하는 야당 측에 “관례에 따라 여야 합의가 없으면 회의록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여당이 회의록을 공개할 경우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입장을 밝히자 민주당은 최 원장 등에 대해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며 국회증언감정법위반 혐의로 고발 안건을 의결했다.
●“감사원장, 헌재에 ‘직무정지 풀어달라’ 가처분 신청해볼 수도”
감사원 내부에선 탄핵 소추 대상이 된 최 원장이 직무에서 배제될 경우 ‘6인 체제’인 감사위원회가 주요 사안마다 3대 3으로 대립하며 ‘교착 상태’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4명(조은석·김인회·이미현·이남구)과 윤 대통령이 임명한 2명(김영신·유병호)로 구성돼있는데, 이중 이미현·이남구 위원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문 전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임명됐기 때문에 감사위원회는 사실상 3대3 구도에서 최 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식으로 운영돼왔다고 한다. 특히 감사원은 연말부터 연초까지 위원들 사이 의견이 갈릴 가능성이 큰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의혹’ ‘사드 기밀정보 유출 의혹’ 감사 결과에 대한 위원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최 원장이 헌법재판소에 “직무 정지 결정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낼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정당해산 심판, 권한쟁의심판을 할 때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고, 탄핵 심판에 대해선 가처분 신청을 낼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다만 헌법재판소법(40조)은 “헌법재판의 성질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민사소송, 형사소송 법령을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잇따르는 탄핵소추로 정부 기관의 업무가 마비될 수 있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가처분’을 통해 업무 마비 위험을 해소하고자 할 가능성도 있다”며 “선례는 없지만 탄핵소추된 당사자가 헌재에 ‘직무정지를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낼 경우 헌재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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