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방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내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러시아 주장) 80주년 열병식에 북한군 부대를 파견해달라고 초청했다. 북한 대표단 참관 등 형식이 아닌, 아예 북한군 부대가 통째로 러시아군 열병식에 동참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이는 내년 1월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겨냥해 북-러가 군사밀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우크라이나 전쟁 정리 과정에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려는 포석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정부 소식통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최대한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미국을) 압박해둬야 빠른 종전을 대가로 트럼프로부터 더 많이 얻어낼 것이라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열병식 파견 등을 계기로 북-러가 연합군사훈련까지 이어가며 한미 군사동맹 수준으로 관계 격상을 꾀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 김정은이 폭풍군단 이끌고 열병식 참석 가능성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달 29일 김 위원장을 만나 내년 전승절 열병식에 북한군 부대 파견을 요청하며 “긍정적 결정을 기다린다”고 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나치 독일에 승전한 것을 기념해 매년 5월 붉은광장에서 전승절 행사를 개최해왔다. 열병식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러시아는 군사적 위세를 과시하는 기회로 이를 활용한다.
특히 러시아가 이미 내년 80주년을 맞는 전승절에선 “역대 최대” 수준으로 열병식 행사 등 개최를 예고한 만큼, 북한군이 처음 여기에 동참하는 건 의미가 작지 않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는 조 바이든 정부와 달리 북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보여왔다”며 “북-러가 보란 듯 밀착하면 트럼프도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북한 파병으로 혈맹인 된 북-러가 북한군의 열병식 참여는 물론 연합군사훈련까지 함께할 거란 관측도 있다. 앞서 지난달 7일(현지 시간) 푸틴 대통령은 양국 연합군사훈련 관련해 “지켜보자. 우리는 훈련을 할 수도 있다. 왜 안 되겠는가”라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 참여하는 부대를 직접 러시아로 데려갈 거란 관측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김 위원장과 북한군 총참모장 등이 수백명의 ‘폭풍군단(11군단)’ 부대원을 이끌고 붉은 광장 열병식에 참가해 북-러간 혈맹 관계를 과시할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함께 러시아의 ‘심장부’에서 폭풍군단 부대원들의 사열을 받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 특수부대인 폭풍군단은 러시아로 1만 명 이상 파병돼 러시아 내 격전지인 쿠르스크 등 곳곳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도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초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것을 계기로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탄도미사일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방사포(다연장로켓) 등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해온 무기나 북한산 자폭 드론 등이 열병식에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 군 당국자는 “북한은 (열병식 참여를 통해) 파병으로 러시아 승리에 톡톡히 기여했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대러시아 무기 세일즈 효과까지 동시에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정은-러 국방, 北무기 지원 등 논의했을듯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벨로우소프 장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정부·군대·인민은 제국주의 패권 책동에 맞서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려는 러시아 연방의 정책을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하루 뒤(30일) 보도했다. 두 사람은 국방분야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고, “만족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북한군 추가 파병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러시아가 일부 첨단 군사기술이나 재래식 무기 등을 지원해 주는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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