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사령관 명의로 나온 ‘포고령 1호’ 전문은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포고령 작성을 누가 썼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사용했던 “반국가세력”, “허위선동” 등의 표현이 담겨 있어 윤 대통령의 현안 인식과 말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전달받은 포고령을 서명한 뒤 발표했다고 밝혔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국방위에서 포고령에 대해 “현재 그 작성 주체는 제가 확인할 수 없고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국방부에서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도 모른 채 극비리 진행된 만큼 윤 대통령의 손을 거친 포고령이 김 전 장관을 통해 전달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尹 공개석상에서 ‘처단’ 2번 언급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가 전문과 6항에 두 차례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며 처음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를 쓴 뒤부터 이를 자주 사용해왔다. 이에 올해 8월 기자회견에선 “반국가세력이라 얘기하는 건 간첩활동을 한다든지, 국가기밀을 유출한다든지, 북한 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포고령 2항에는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에도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 선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고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가짜뉴스에 기반한 허위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 언급했다.
“반국가단체”, “허위 선동:의 표현들은 과거 포고령에는 없었다. 1972년 10월 발표된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각 대학의 휴교 조치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 행위를 금지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 금지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평소 격정적이고 거친 화법이 포고문에 고스란히 묻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야당의 입법 독재 등에 대해 불만이 쌓인 윤 대통령은 3일 긴급 담화문에서도 야당을 향해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폭거’, ‘패악질’ 등 용어를 썼다.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이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야 한다는 이례적인 내용도 윤 대통령의 관여를 짐작케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의료계에선 복귀 명령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표현에 격앙된 반응을 내놨는데 윤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처단’이라는 표현을 두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은 전세사기범과 그 공범들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 반드시 처단해주기 바란다”고 하는 등 전세사기범과 불법사금융업자를 향해 이 표현을 썼다. 처단은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한다는 뜻이다.
● 국방차관 “포고문, 국방부가 작성하지 않아”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 총장은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자신의 명의로 된 발표된 포고령 1호에 대해 “제가 (포고령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기에 ‘장관님, 이것은 법무 검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장관이 “법무 검토를 마쳤다”고 해서 발표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포고령 선포가 임박했는데 발령 시간이 오후 10시로 적혀 있어 이를 오후 11시로 수정하도록 한 뒤 자신이 서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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