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계엄’ 후폭풍]
어제 ‘계엄 입장’ 발표하려다 침묵
용산 “탄핵안 표결 이후 발언할 듯”
“與 ‘탄핵반대 당론’ 영향 주시” 분석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 선언 이후 이틀째인 5일에도 공개 일정 없이 ‘침묵 모드’를 이어갔다.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전방위적 파장이 일고 있는데도 대국민 사과도, 설명도, 사태 수습에 대한 책임 있는 발언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입장 발표를 검토하다가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5일 “최소한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이뤄지는 7일까지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4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및 중진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담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국민적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 데 대해 사과 또는 유감을 표명하는 동시에 계엄 선포 배경과 정당성을 재강조하는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여권 안팎에선 4일 오후 11시, 5일 오전 10시경 등 담화 시점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분분했다.
윤 대통령이 5일 담화 형식의 입장 발표를 보류한 데에는 국민의힘이 이날 새벽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굳이 사과나 유감 표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7일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다는 주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다가 오히려 악수를 둬 국민의힘 이탈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참모들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당정대 회동에서도 비상계엄을 “더불어민주당의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경고성 조치였다”며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야당의 탄핵 남발과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로 인한 국정 마비를 지켜볼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여권 안팎에서는 비상계엄의 위법성 등에 대한 논란이 큰 만큼 윤 대통령이 입장 표명을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나 사태 수습에 대한 책임 있는 발언 등이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하다”며 “대국민 설명이 늦어질수록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이날도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으면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후임으로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발표하러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내려왔지만 질의응답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은 “이번 계엄은 국정을 정상화하고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시도한 것”이라며 정당화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볼모로 법률안과 예산안을 방해하고, 타협할 수 없는 국가안보를 훼손한 세력에 대한 불가피한 대처였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결단이었다”며 “국회의원 과반수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요건을 알고 있었지만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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