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예산안 통과 안된다고 비상계엄? 그러면 美선 깨질 유리 안남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7일 03시 00분


[탄핵 가결 이후] ‘트럼프 1기 美대사’ 해리스 인터뷰
정치위기 초래, ‘실책’이자 ‘자책골’
계엄령, 한미동맹 가치 상충되지만… 동맹 강력, 지속적 손상은 없을 것
워싱턴-서울 신뢰부족 심화는 우려… 미국인들, 주한미군 의문 가질수도

주한 미국대사 퇴임 9개월 후인 2021년 10월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필드의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던 해리 해리스 전 대사. 해군 출신답게 자택 곳곳에 해군 모병 광고, 해군 잠수함과 군용기 그림 등이 보인다. 해리스 전 대사 제공
“이번 계엄 사태로 (미국인들이) 다수의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14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 계엄령 선포를 두고 “한미 동맹이 공유하는 근본적, 민주적 가치와 상충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다음 달 취임하면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1기 행정부(2017년 1월∼2021년 1월)에서 2년 반(2018년 7월∼2021년 1월) 동안 주한 미국대사로 활동한 해리스 전 대사가 이번 계엄령 선포가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미국민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해리스 전 대사는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 뒤 해군에서 복무하며 태평양사령부(현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까지 지냈다. 아시아계 최초의 미 해군 4성 장군 출신으로 최근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인사 중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에 가장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미 동맹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인사로도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놀랍고 당혹스러우며 충격적이었다. 앞서 한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벌어진 일이었다. 그땐 한국 내 정치 암흑기였다. 현재 한국의 정치적 역학은 당시와 완전히 다르다. 정말 기이했다(bizarre).”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미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나는 워싱턴이나 서울의 당국자들과 이와 관련된 대화를 구체적으로 나눈 적이 없다. 이에 따라 관련 보도의 진위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사전 협의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계엄에 미국 정부가 강하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전 협의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동맹국 간 신뢰 부족 문제는 커질 것이다. (한미가) ‘울타리 수리(fence-mending·신뢰 부족 문제가 생긴 것을 개선하는 조치)’에 나설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끼칠까.

“윤 대통령이 계엄을 철회한 것이나 국회의원들이 계엄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선 국민들과 함께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선 건 다행이다. 이러한 행동은 활기찬 민주주의의 표상이다. 다만 (계엄 선포에 따른 후폭풍으로) 한국은 불필요하게 정치적 위기로 빠져들었다. 그로 인해 초래된 정치적 마비 상태는 우려스럽다. 이는 야구에선 ‘실책’, 축구에선 ‘자책골’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이 한미 동맹 내 긴장이나 불신까지 초래할 것으로 보는가.

“동맹은 크고 작은 폭풍을 견뎌낼 만큼 강력하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후 철회까지 걸린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했다. 한미 동맹은 매우 강력하며 근본적이고 중요한 만큼 이번 사건으로 (한미 동맹이) 지속적 손상을 입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드라마’(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가 길어질수록 정치적 마비 상태에 따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까지 이어지며 발생한 리더십 공백이 트럼프 당선인 취임에 앞서 한국 정부의 대비 과정에 영향을 끼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계엄 사태는 워싱턴과 서울 간 신뢰 부족 문제를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미국인들이) 다수의 주한미군을 유지할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이 공유하는 근본적, 민주적 가치와 상충된다.”

그는 대사 재임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나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미국 입장을 강하게 대변해 수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해리스 전 대사의 발언을 두고 당시 문재인 정부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등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해리스 대사는 국무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한다”고 밝히는 등 분명한 지지 의사를 재확인했다. 주한 미국대사 재임 당시 그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신뢰는 그만큼 컸다.

―현재의 정치적 혼란이 외교 안보 등의 분야에서 한국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이 내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북한은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 위협, 특히 북한에 대응한 연합 대비 태세부터 최우선으로 유지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일본이 한국을 신뢰할 만한 민주적, 전략적 파트너로 여기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안에) 대일외교 관련 대목까지 포함돼 있던 만큼 더욱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탄핵이나 조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 극단적인 ‘비상 상황용 옵션’을 택한 건 외부적 위협이 아닌, 내부적인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다수인 입법부가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비상사태가 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워싱턴에는 깨질 유리조차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비상계엄#해리 해리스#인터뷰#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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