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관련 정책 토론회 좌장을 맡아 “기업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이후 국회 처리를 위한 여론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 재계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빗발칠 것”이란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표가 이날 직접 토론회 사회를 맡은 것을 두고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대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 재계 “판사님을 회장님으로 모셔야 할 판”
이날 토론회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재계 측과 찬성하는 개인 투자자 측 간 ‘7 대 7’ 토론으로 진행됐다. 재계 측 토론자들은 상법 개정 시 기업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돼 인수합병(M&A) 및 신규투자 등 경영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고 오히려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상법이 개정되면) 기업가정신의 후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결국 기업 경영을 법원에 맡기게 돼 ‘판사님을 회장으로 모셔야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쓸 자금을 경영권 방어에 써야 해 오히려 주식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재계는 자본시장에서 소액 투자자들이 일방적인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분할 후 상장, 합병 비율 등에 대한 ‘핀셋 규제’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정연중 심팩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충실의무라는 추상적인 규정으로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어렵다. 자본시장법 개정과 증권발행 공시 강화 등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상법이 개정되면 국내 기업이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되기가 더 쉬워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반면 투자자 측은 상법 개정이 기업의 투자 매력을 높여 결국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주주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는 상황을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상법 개정안의 취지”라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 박광현 씨는 “MZ(밀레니얼+Z세대) 투자자들은 이미 대거 한국 장에서 이탈해 외국 주식과 코인(가상화폐)으로 ‘돈 맛’을 보고 있다”며 “이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경영진이 감내할 만한 ‘적정 수준의 개혁’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잠재적 투자자로서 아쉬운 것이 많다”며 주주 이익 보호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양측 주장에 대해 추가 질문을 제기하며 토론을 이끌었다. 경영자 측이 ‘상법을 개정해 비상장 기업까지 규제하는 건 지나치다’고 주장하자 “그럼 상장회사만 잘라서 주주 충실의무를 적용하면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대로 투자자 측에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만 개정하면 된다는 의견도 꽤 그럴듯한데 반론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 민주당 “1월 임시국회 중 처리 목표”
이날 토론회는 당초 4일 열릴 예정이었다. 민주당은 연내 상법 개정안 처리를 목표로 토론회를 4일 열기로 했으나 전날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탓에 보름가량 연기됐다. 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올해 안에 처리하기는 어려워졌지만, 내년 1월 중에는 본회의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재계에서 제기한 우려를 비롯해 이달 30일 열릴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의 공청회에서 제기되는 반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기본 기조는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원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세트’로 가기로 했던 내용인 만큼 상법 개정 기조 자체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