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숨진 ‘정경홍’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병사의 메모를 28일(현지 시간) 세 번째로 공개했다. 이번 메모는 정경홍의 일기로 추정된다. 특수작전군은 정경홍이 주임 상사로 진급할 기회를 얻었으나 특정 범죄를 저질러 강등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중 일부는 복귀 이후 사면이나 감형 등을 약속받은 범죄자인 것으로 분석도 나온다. 파병 북한군들이 북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포로로 잡힐 경우 투항 대신 자결을 택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계기로 러시아의 쿠르스크주 공세가 거세지자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점령지의 절반가량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나머지 영토도 봄이 올 때까지 러시아가 다시 수복할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러 파병 北 군인들 포로 잡힐 것 두려워 서로 처형”
이날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의 발표와 메모 내용을 종합하면 메모는 “나는 은혜로운 왕의 품속에서 세상에 무리없이 마음껏 배우며 자랐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 정경홍은 “조국보위는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며, 조국이 있어야 나의 모든 행복이 있기에 위대한 최고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혁명의 군복을 입었다”고 전했다. 최고사령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경홍은 “주임상사로 진급할 기회라는 축복이 주어졌지만 당의 사랑과 은덕을 저버리고 최고사령관 동지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에서는 나에게 인생의 새출발을 할 수 있는 재생의 길을 열어줬다”며 “나는 이번 작전에서 대오의 맨 앞에서 달려갈 것이며, 나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정은 붉은 특공대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온 세계에 보여줄 것이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 조국으로 돌아가면 어머니당에 청원할 것이다”는 말을 끝으로 메모를 마무리했다. 특수작전군은 이를 두고 “정경홍은 어떤 잘못으로 인해 러시아로 파병됐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가족이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7일 “북한 군인들은 우크라이나군에 투항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고가 있다”며 “붙잡힐 경우 가족들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커비 보좌관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일주일간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사상자가 1000여 명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북한군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와 북한 책임자들은 군인들의 생존에 전혀 관심이 없다”며 “모든 것은 북한군이 우리에게 잡히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또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북한군이 서로를 처형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러 쿠르스크 공세에 우크라 점령지 절반 잃어
한편 북한군 가세로 강화된 러시아의 쿠르스크주 공세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 점령지의 절반가량을 잃었다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봄이면 점령지를 전부 잃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군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쿠르스크주 지휘관들은 “현 상황이 어려워 사기가 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쿠르스크 점령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한 소대장은 “상급자들이 부대의 방어 전선 위치를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반복적으로 거절하고 있다”며 “최후까지 버티는 병사들은 결국 실종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8000명의 추가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 미국 당국자는 “북한이 봄까지 8000명의 군인을 추가로 파병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이 분석은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처럼 러시아의 공세가 거칠어지면서 향후 휴전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협상력을 잃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는 현재 전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휴전 협상 전에 가능한 많은 영토를 되찾기 위해 회담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