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38일째 장기농성에 들어간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전후로 지지층을 겨냥한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1일 관저 앞 집회 참석자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신호탄으로, 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 등 변호인단의 성명과 기자회견,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관저서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서신 등 전방위적 형태로 심리전에 나선 것.
윤 대통령 측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영장 시도를 두고 연일 “‘불법 체포영장’ 집행이 곧 내란”이라며 되치기에 나섰다. 비상계엄 선포를 ‘평화적 계엄’이라고 주장하는 등 불가피한 권한 행사였다고도 강변한다. 정치권에선 “비상계엄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고립된 약자’로 계엄 사태 본질 흐리기
윤 대통령 측의 여론전의 핵심은 ‘윤 대통령은 고립된 약자’라는 주장에서 시작된다. 비상계엄을 발동해 국가적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피하면서 자신을 ‘불법 내란 수사’에 따른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변론준비기일에서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이렇게 고립된 약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군대를 투입했다고 하면 언론에서 내란 저지른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나오고 말 한마디 가지고 체포영장까지 발부됐다”고 했다. 또 10일 성명에선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법체포를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바로 진정 ‘내란’”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도 옥중서신을 통해 “위대한 국민들께서 선출하신 대통령을 불법적인 체포까지 시도하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자유대한민국을 파괴시키려는 내란 행위”라고 선동했다.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이 국회의원 정치활동 금지 내용을 담은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 대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음에도 오히려 윤 대통령을 향한 내란 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
공조수사본부가 체포영장 집행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교묘한 심리전도 펼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전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을 공수처와 경찰이 장갑차와 헬기를 동원해 보여주기 체포를 하는 건 내전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공수처의 체포영장은 윤 대통령이 3차례 수사를 거부하는 등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발부된 것.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 집행에 정당한 이유 없이 저항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 등 범죄”라고 지적했지만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충돌의 책임이 공수처에 있다고 전가한 셈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인의 내란을 상대방의 내란이라고 프레임을 전환해서 ‘절차에 하자가 있고, 자신이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고 지지자들을 호도하고 반응하도록 하는 에코 체임버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며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 분석했다.
● 지지층 결집에 비상계엄 정당화 프레임 전환
윤 대통령을 ‘고립된 약자’로 내란죄 수사와 체포영장을 불법으로 규정한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자체도 정당화하고 있다. 석동현 변호사는 9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계엄 실패가 아니라 평화적 계엄이라 프로세스가 그렇게 설계됐다”라며 “어차피 국회의 해제 의결을 염두에 두고 비상계엄이라는 수단을 통해 위기 상황을 알리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엄 과정에서 실탄 5만 7000여 발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평화적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
윤 대통령 측이 비상계엄에 대한 교묘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계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보수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자기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자 결국 지지자들에게 나를 구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계엄 내란도 큰 죄지만 자신의 정치적 탄핵절차나 징벌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민들을 더 분열시켜 정치 지형에 큰 비용을 떠넘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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