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실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차 발표는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정무적인 영향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장관님께서 비유로 든 것 자체가 많이 부각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탐사 1차 시추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해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6월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밝힌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발언 등이 성급했던 것 아니냐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1호 국정브리핑’으로 발표했던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개입이라는 ‘정무적인 영향’으로 인해 해당 부처가 경제성 등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1호 국정브리핑’ 나섰던 尹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이어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며 “세계 최고의 에너지 개발 기업들도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이 같은 브리핑 계획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다. 대통령실은 당시 오전 10시 예정된 브리핑 시작 8분 전에야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일정을 공지했다. 윤 대통령은 동해안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발표한 뒤 4분 만에 자리를 떠났고, 질문은 안 장관이 대신 받았다. 안 장관은 “동해 석유·가스전의 매장 가치가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당시 삼성전자 시총(약 440조 원)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약 2200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밝힌 것.
윤 대통령이 특정 정책 현안을 주제로 국정브리핑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고금리, 고물가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야당에선 “사업성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국면 전환을 위해 섣불리 발표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4월 총선 패배 이후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기대하며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계엄 발동 이유라던 ‘예산 삭감’으로 이어져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1차 시추 결과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제적·사회적 비용만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대통령실에서도 ‘이건 실패 위험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발표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산업부에서도 결과에 대한 압박이 상당해 객관적 판단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정치권의 갈등을 키우면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발동 이유로 밝힌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감액 예산 통과 과정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 “무리한 프로젝트 진행”이라며 예산 497억 원을 삭감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하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박춘섭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이날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삭감이 비상계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수석은 “예산 일방 삭감 이런 게 (비상계엄 선포에) 종합적으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며 “(대왕고래 프로젝트) 2차 시추 예산이 없어지니까 유전 개발이나 이런 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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